“무지하게도 고엽제로 샤워를 했습니다”
“고엽제 발병증세는 고엽제의 피부접촉, 호흡기계통, 구강계통 등으로 감염되는데 이 고엽제는 각종 기관과 피부, 근육 등에 붙어 피부지방질로 침식하므로 물로도 씻겨지지 않고 평생 동안 잠복하여 인체에 각종 암과 합병증을 유발시키는 맹독성 화합물질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말라가고 썩어가고 있는 전우들이 많습니다.”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담양군지회 김청수(72) 지회장을 만났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밀림을 없애 게릴라전을 막고 월맹군의 군량 보급을 차단할 목적으로 다량의 고엽제(枯葉劑)를 살포한다. 이 화학물질은 농약의 용도상 분류에서 낙엽제(落葉劑)에 해당하는데 속칭 고엽제(枯葉劑)제라고 한다. 이 화학물질은 2·4·5-T계와 2·4-D계를 혼합해 제조한 것으로 우리 농촌에서 사용하고 있는 제초제도 성분이 비슷하다.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69년, 미국은 동물실험을 통해 이 살포제의 유해성을 밝혔다. 2·4·5-T계와 2,4-D계 제초제를 합성할 때 함유하는 초미량의 불순물인 다이옥신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물질이 인체에 들어간 뒤 5∼10년이 지나면 각종 암과 신경계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밝히고 이 약제의 사용을 중지했다.
“미국군은 베트남전쟁 당시 밀림에 대대적으로 제초제를 살포하는 이 작전을 오렌지작전이라고 했습니다. 살포약제의 대부분(67%)이 에이젠트 오렌지(AGENT ORANGE)였기 때문입니다. 용기의 드럼통은 오렌지색의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하얀색이었습니다. 80년대 어느 소설가가 베트남전쟁을 그린 소설 ‘하얀 전쟁’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밀림을 없애면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월맹군의 근거지를 없앨 수 있는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고엽제 살포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너무도 무지했던 겁니다.”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담양군지회 김청수 지회장은 1968년 8월 1일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어 14개월 동안 복무하고 귀국했다. 김씨는 당시에 이 살포제의 독성에 대해서 잘 몰랐다.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담양군지회는 2009년 7월에 발족했다. 김씨는 발족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회장 직을 맡고 있다. 현재 담양군지회에 등록된 회원은 78명이다. 베트남전쟁에 참여해 고엽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담양 관내에 100명이 넘는다. 장애등급이나 상이등급을 받은 사람들도 있는데 지회와 거리를 두고 입회를 안하는 사람들도 많다.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을 숨기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너무나도 무지했으니까요. 밀림에는 모기를 비롯해 갖가지 해충들이 많습니다. 야간잠복을 나가면 모기떼가 엄청나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적에게 발각되기 때문에 참고 모기떼의 공격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엽제의 등장은 반갑기도 했습니다. 미군기가 날아와 고엽제를 뿌리는데 눈이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군인들이 일부러 그걸 맞았습니다. 그야말로 하얀 분말로 샤워를 했던 것입니다. 고엽제를 살포하는 군용기를 반기는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군인들은 고엽제가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이 고엽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피해를 입혔습니다. 인체에 직접 닿은 것이 1차 피해고, 고엽제가 희석된 물에서 몸을 씻는 것이 2차 피해고, 이에 오염된 농작물이나 식수를 섭취하는 것이 3차 피햅니다. 우리는 이런 모든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던 겁니다. 직접 당사자인 참전 전우들의 후유증도 문제지만 2세나 3세에 대물림을 해서 어떤 무서운 증상이 나타날지 그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1994년 6월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의 군인 및 민간인 약 200만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의 베트남 참전용사들 중에서도 고엽제로 인하여 상당수가 두통, 현기증, 가슴앓이, 피부에 혹이 생기는 등 고엽제 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미국군 중 다수의 사람들이 고엽제로 인한 피해를 제기해 제조회사로부터 보상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미국의 제조회사는 보상을 해주느라 망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가 조직적으로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군사정권시절 피해자들의 제소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던 겁니다. 국민의 안위를 방해하는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우리 피해자들의 의견을 경청해 주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피해 보상금이라고 해서 매월 쥐꼬리만큼씩 지급되고 있습니다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2세나 3세들에 대해 철저한 역학조사를 통해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아이들이 무슨 죕니까? 베트남전쟁에 참여한 아버지, 할아버지를 둔 것이 죄가 됩니까? 20년 후쯤이면 피해 당사들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이 별로 없고 고엽제전우회라는 단체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우리가 죽은 뒤에라도 어떤 비극적이 후유증이 나타날지 그것이 큰 걱정입니다. 그리고 우리 농촌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제초제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초제가 목본과 초본식물을 고사시키는 고엽제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국제연합(UN)은 고엽제를 '제네바일반의정서'에서 사용금지한 화학무기로 보고 베트남전쟁 이후 고엽제의 사용을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농업국에서는 여전히 고엽제가 작물파괴용으로 사용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현 상태에서 우리 고엽제 피해자들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전우회 자체에서도 특별한 대책이 없고, 정부에서도 우리들의 문제를 점점 잊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매일 지회 사무실에 나오지만 크게 할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까지 별다른 후유증을 감지하지 못하고 사는데 아마도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시간만 나면 산으로 가니까요.”
담양에는 열여덟 개의 산악회가 있다. 산악회가 많다는 것은 그 지역의 주민들이 건강한 삶을 즐기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담양에서 산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김청수씨는 귀감이 되고 있다.
“제가 한 산행의 한 횟수는 1천400회 정도가 됩니다. 주말마다 산행을 한다고 해도 일 년이면 50회 정도 할 수 있으니까 스스로 생각해 봐도 엄청나게 많이 다닌 거죠. 저는 근심걱정을 떨쳐 버리기 위해 산에 갑니다. 어쩌다 고민거리가 생기면 남산에라도 올라갑니다. 그리고 내려올 때면 아주 홀가분한 기분이 됩니다. 그리고 높은 산이든 낮은 산이든 얕잡아 봐서는 안 됩니다. 산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올라야 합니다.”
언젠가 전라북도 덕유산으로 겨울산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눈밭에서 넘어져 6m 아래로 미끄러지면서 갈비뼈를 다쳐 보름동안 입원을 했다. 취재를 마치면서 요즘 어떤 산이 좋을까 김 씨에게 물었다.
“이때쯤이면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억새밭이 장관입니다. 고난도가 없는 이 산은 초보자들에게도 적격입니다. 이 늦가을에 민둥산을 추천합니다.”
*이 글은 2017년 11월 28일 현재 이야기입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