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인물지도>115. 담양군 죽검명인 황인진씨
<담양인물지도>115. 담양군 죽검명인 황인진씨
  • 설재록 작가
  • 승인 2017.12.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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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재해야 동서남북이 생깁니다”

 

2013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는 ‘거시기, 머시기’였다. 이 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300여명의 국내외 작가 가운데 황인진(52)씨도 참여를 했다. 출품작의 제목이 ‘낭창낭창’이었는데 대나무를 재료로 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낭창낭창은 안락한 소파의 일종인데 기발한 착상과 미학적 감각이 합쳐진 이 작품을 나도 관심 있게 보았다.


담양 쌍교에서 광주 용전 쪽으로 잠시 가다보면 오른편에 죽검을 만드는 공방이 나온다. 지나다니면서 늘 호기심을 가졌지만 방문할 기회는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우연한 자리에서 황씨를 만나게 되었다. 물론 피차간 초면이었다. 그렇게 해서 황씨의 공방을 찾아갔는데 그 공방에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낭창낭창의 작가가 바로 죽검 명인 황인진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씨가 대나무로 칼을 만들기 시작한 지는 30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 만든 대나무칼은 검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생계수단으로 만든 아이들 장난감 칼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주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 봐도 대나무로 물건 만드는 데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죽제품 만드는 것을 보고 자라서 그러는가 봅니다.”


황씨는 소싯적에 서울에서 죽제품 가게를 했다. 그런대로 가게 운영이 잘 되었다. 그런데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병원에서도 포기를 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었다. 황씨는 결국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고향집으로 내려와서 자연식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그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자연식을 시작했다. 그때 황씨의 아내도 함께 했다. 그리고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한때 삶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고 아내 김미숙씨는 그때를 술회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비어 있는 시댁으로 들어올 때는 죽으러 온 겁니다. 제가 화식을 하면 남편이 얼마나 먹고 싶겠어요. 그래서 저도 남편과 보조를 맞춘 겁니다. 남편의 의지가 참 강했어요. 죽을 사람이라고 포기했어요. 그런데 살려는 의지가 강하니까 위기를 극복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 장난감 칼이 처음에는 별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두개 정도 팔렸다.  그래도 꾸준히 하니까 거래처가 늘어나고 어느 정도 지나니까 전국 각처에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때는 직원을 일곱 명이나 둔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이내 가슴에 수심도 많네’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이 책은 칠팔십년대 모 신문사의 논설위원을 지낸 언론인이 쓴 에세이집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가슴에 꽂힌 대목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선농단에 제사를 지낼 때 죽검, 그러니까 대나무칼로 소를 잡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죽검에 대한 역사적 자료 등을 공부하며 반드시 재현해 내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 일에 몰두했습니다. 죽제품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고장의 사람의 손에 의해서 죽검이 재현되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졌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역대 임금들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선농단(先農壇)에서 선농제를 지내고 적전(籍田)에서 직접 농사일을 했다. 이때 임금과 참석한 신하들이 쇠고기를 넣어 끓인 국을 먹었다. 여기에서 설렁탕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선농단이 설렁탕으로 변천했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죽검은 좋은 음식, 귀한 음식을 만들 때 사용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신검이 바로 죽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신검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신검은 대나무로 만든 것이다. 이 신검은 나라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었다. 이 제사에 쓰일 음식 재료를 손질할 때 신검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사 지낼 때 추는 검무(劍舞)를 출 때도 죽검을 썼다. 세자나 세손 등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물로도 쓰였다.


공부를 하던 황씨는 도록(圖錄) ‘우리나라 전통무기’에서 신검을 찾아냈다. 그리고 도록에 실린 신검을 부산 동아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곧바로 동아대를 찾아가서 허락을 받아 탁본을 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고증도 하고, 유래에 대해 공부도 하고, 기법도 연구를 했습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3년이 걸려 재현에 성공했습니다. 그 칼에 다섯 가지의 색, 즉 오방색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방색은 황(黃), 백(白), 흑(黑), 청(靑), 적(赤)입니다. 이 가운데서 황은 임금을 상징하는데,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내 자신이 황인 것입니다. 내가 존재해야 동서남북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 동서남북의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자신입니다. 그런데 신검의 칼자루 매듭은 녹두색입니다. 녹두색은 부모 공경, 잡귀 축출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절의 단청 색깔의 80% 이상이 녹두색인데 귀신을 물리치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신검을 재현하고 황씨는 ‘오방신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신검을 재현하고 나서 지금까지 다섯 개를 복제했다. 그 가운데 두 점은 동아대박물관과 담양대나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또 한 점은 전직 대통령이 이라크 왕세자에게 선물하겠다며 가져갔다. 어느 날 어떤 무속인이 찾아와 선몽을 했다며 그 칼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한 점은 황씨가 소장하고 있다.


황씨의 솜씨는 텔레비전 방송국이나 영화계에서도 알아준다. 황씨가 만든 칼과 활이 태왕사신기, 주몽, 야인시대, 불명의 이순신 등 대하드라마의 소품으로 사용되었다. 불멸의 이순신 때는 화살만 1톤을 만들었다.


“화살의 깃털은 꿩털로 만드는데 꿩 한 마리에서 화살 두 개가 나옵니다. 닭털이나 오리털로 만들 수 있지만 화살로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무늬만 화살일 뿐입니다.”


황씨의 집 한쪽에 대장간이 있다. 황씨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 ‘대장간’이라는 그림에 나와 있는 것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쇠를 녹이는 가마, 바람을 일으키는 풍구를 그림에 나와 있는 그대로 재현했다.


이 가마에 쇠를 녹이고 망치로 두드리고 담금질을 해서 칼을 만든다. 쇠를 녹이는 것은 칼이 만들어지는 첫째 과정이다.


“쇠가 제대로 녹았는가 하는 것은 색으로 가늠합니다, 그 빛깔을 보기 위해 새벽이나 밤에 대장간 일을 해야 합니다. 섭씨 1,200도에 녹는데 이 때 빛깔은 선홍색입니다. 그걸 보면서 잘 익었다 하고 감탄을 합니다.”


선홍색은 밝은 붉은색이다.

*이 글은 2017년 12월 18일 현재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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