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인물지도>116. 담양군 지호공예 명인 김미선씨
<담양인물지도>116. 담양군 지호공예 명인 김미선씨
  • 설재록 작가
  • 승인 2017.12.2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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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공예는 우리민족의 정신이 깃든 문화자원입니다”

 

흔히들 ‘질긴 인연(因緣)’이라고 말한다. 질기기 때문에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질긴 인연처럼 한지와 함께 살아가는 담양군 지호공예(紙糊工藝) 명인 김미선(50)씨를 만났다.
“한지는 지질이 부드럽고 통풍이 잘 되며 잘 찢어지지 않고 냄새가 향긋해 먹물을 잘 빨아들여 그림 그리기가 좋습니다. 가벼워서 솜 대신 옷에 넣어서 방한으로 썼으며 매우 질겨서 화살이 뚫고 나가지 못해 갑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습니다. 펄프라고 하는 양지와 닥으로 만든 우리 한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닥은 조직들이 서로 잘 얽히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양지보다 한지가 더 질깁니다. 한지로 만든 수백년 넘은 책들이 아직도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도 한지의 우수성 때문입니다.”
김씨는 첫 마디부터 한지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이 한지의 우수성에 매료돼 한지공예를 시작했다.
우리 선조들은 질 좋은 한지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공예품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것을 통칭, 지(紙)공예, 한지공예, 지물공예, 종이공예라고 한다. 이 한지공예는 제작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되는데 김씨가 주로 하는 작업은 지호공예다.
김미선씨의 공방은 창평면 의병로에 있다. 공방 안에는 그동안 김씨가 만든 작품들로 꽉 차 있다.
김씨가 지호공예에 매료돼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지도 어언 20여년이 다 되었다. 원래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전공과 관련한 일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취미로 시작한 지호공예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산업디자인과에 학사 편입을 했고, 내친 김에 대학원까지 마쳤다.
“처음에 한지공예를 하면서 디자인 측면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기초부터 정식으로 공부하고 싶어 다시 대학에 갔습니다. 그리고 지호공예에 대한 이론적 자료가 제대로 정리가 안되어 이것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싶어 대학원에 진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단계 공부를 마치고 나니까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박사과정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려워서 도전을 못하고 있습니다. 석사논문 쓸 때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박사논문 쓸 생각을 하면 지레 겁부터 납니다. 대한민국에서 지호공예 하면 김미선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꿈이기는 한데 아직은…”
김씨는 2015년에 지호공예 자료집을 낸 바 있다.
한지공예라고 하면 보통사람들도 얼른 이해를 한다. 그런데 지호공예라고 하면 조금은 생소한 느낌을 갖게 된다.
“한지로 하는 모든 공예를 넓은 의미에서 한지공예라고 하고 지호공예는 한지공예 안에 들어 있는 한 분야입니다. 여기서 쓰는 글자 ‘호’자는 풀, 끈끈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선조들은 한지에다 점성이 강한 자연물을 혼합해 지호공예를 했던 겁니다. 바닷가에서는 민어의 부레나 우뭇가사리를 넣었고 산간지방에서는 느릅나무 껍질이나 황촉규를 넣어 점성이 강하게 했습니다. 한지를 뜰 때 황촉규를 넣기 때문에 한지 자체만으로도 지호공예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지호는 쉽게 말해서 종이죽입니다. 이 지호공예는 신라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생활용품보다는 주로 불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석가모니불 부조 108불을 작품으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김씨는 2016년 여름, 서울에 있는 법륜사 불일미술관의 초대를 받아 ‘좋은 인연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가졌다. 전시회의 제목은 불일미술관 학예실장 구담스님이 붙여 주었다. 구담스님은 전시회 팸플릿 서문에서 ‘한지는 천 년, 비단은 오백 년’이라고 했다. 그리고 ‘김미선 작가는 맑은 선근을 가진 법향만큼이나 가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전남 담양의 한갓진 대숲의 맑은 기운으로 한 땀 한 땀 수놓듯 전통 한지를 조성해 불사의 격조를 계승하고자 하는 깊은 발원을 주목하면서 작가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점점 관세음보살을 닮아가는 그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라고 했다.
김씨는 불교 신자다. 불교에서는 인연(因緣)을 중시한다. 인(因)은 결과를 낳기 위한 내적인 원인을 의미하고, 연(緣)은 이를 돕는 외적인 간접적인 원인을 의미한다.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이 연(緣)이 만나 인연(因緣)이 되는 것이다.
김씨는 대덕 운암리에서 살고 있다. 태어난 곳은 장흥군 대덕면이다.
“장흥 대덕 처녀가 담양 대덕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씨가 펴낸 자료집을 통해 한지공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상식을 갖게 되었다.
한지공예는 제작 방법에 따라 전지공예(剪紙工藝), 지승공예(紙繩工藝), 지장공예(紙壯工藝), 지화공예(紙花工藝), 후지공예(厚紙工藝) 등으로 나누어진다.
전지공예는 한지를 여러 겹 배접해 골격을 만들고 이 골격에 한지를 덧발라 문양을 내는 방법인데 책장이나 장롱 등을 만든다. 지승공예는 한지로 노끈을 만들어 엮는 방법인데 돗자리, 망태기 등을 만든다. 지장공예는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안팎으로 한지를 여러 겹 덧바르는 방법인데 화살통, 동고리 등을 만들었다. 지화공예는 한지를 이용해 생화 대용의 꽃을 만들었는데 어사화가 이에 해당한다. 후지공예는 한지를 여러 겹 겹쳐 두껍게 한 다음 칠을 하면 가죽처럼 질겨지는데 이것으로 서류함, 지갑 등을 만든다.》
최근 김씨는 ‘한지와 한글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일련의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언뜻 보기에 그림 같기도 하고 부조 같기도 하다. 이 작품 속에 나열되어 있는 사물들은 기역, 니은, 디귿 등 한글의 자음들이다.
“저는 이 작품을 한글과 지호공예의 만남, 회화적 지호공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전국적으로 저 혼자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 선조들은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기 위해 지호공예를 누구나 보편적으로 했습니다. 자급자족하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지호공예가 생활의 수단이 아닌 예술로 승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것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나만의 독창성이 있어야 합니다. 끝없이 고민하고 시행착오도 하면서 죽어라고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호공예는 여성들이 가볍게 하는 공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마 도예하는 사람들보다 더 힘들 겁니다. 지호공예는 거의 육체적인 힘으로만 해야 하니까요.”
김씨는 과도한 작업으로 어깨의 인대가 늘어나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 그런 고통의 시간들이 작품으로 남아 김씨의 공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요즘 작품 제작 말고도 가르치는 일로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남자 분들은 지호공예에 대해 별로 관심을 안 갖습니다. 여성들이나 하는 일로 보는 것 같아요. 지승공예는 남성들의 공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성분들이 참여해 주면 여성들보다 훨씬 역동적인 작품이 탄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글은 2017년 12월 26일 현재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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