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담양설화 및 전통 이야기-1
천년 담양설화 및 전통 이야기-1
  • 자료제공=담양문화원
  • 승인 2020.03.1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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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시장

 

마을 있는 곳에 대숲이 있고 대숲 있는 곳에 마을이 있는 담양은 독특한 생활문화와 함께 산수 좋은 곳마다 누정을 짓고 시문을 남긴 선비들의 문학적 전통이 면면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지역의 향토문화에 대한 원천자료의 소중함이 날로 커지고 있는 시기에 본지는 담양문화원(원장 이병호)의 도움으로 관내 350여개 마을에 예로부터 전래하는 설화들 중에서 일부 내용을 지면에 연재한다.


이는 혹여 잊혀 질 뻔한 담양의 소중한 전통을 기록하고 알려 기성세대에게는 어릴 적 아련한 추억과 함께 고향사랑을 일깨우고 자라나는 후배들에게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야 할 소중한 전통임을 알리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단 지면의 내용들은 오랜 구술에 의해 전래된 설화와 전통들이, 특성상 단지 기억에 의존하여 제보를 해준 구술자에 따라 가공·변형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


# 담양의 중심상가였던 담주리 시장
▲제보자=김창돈(1954년생)


▲줄거리=담주리 주민들은 담주리 시장이 담양에서 가장 중심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으며 여인숙과 극장, 닭전머리 등이 있던 중심상가에서 장날이면 씨름대회가 열리는 등 각종 시장문화와 함께 가장 많은 주민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야기=담주리 길을 예전에 영정통(번화가의 일본식 말)이라고 불리 울 때는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고, 내가 원래는 담주리 시장에서 주유·과자랑 도매를 하고 시장통에 팔았다.


내가 거기 태어나서 50년 동안 살았어. 그랬는데 내가 거기가 영정통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 거기를 우리는 본정통(도시 중심가의 길)이라고 했다.


광주시 충장로도 본정통이라고 했어. 담주리가 그랬고, 담양군에서 제일 핵심적인 거리로 상가에서도 제일 중심가였다. 시장 내에 나무로 지어진 일본식 건물인 여인숙 ‘백일장’이라는 곳고 있었는데 요정도 같이 있었고,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방천 위 뻥튀기집 앞에 닭전머리라고 불린 곳은 닭을 잡아다 판매 했다.


시장 옆(시장 주차장)과 청운식당 앞에 주차장에는 미나리깡이 두 개 있었다. 미꾸리지 방죽도 미나리깡 옆에 있었는데 물이 참 깨끗했다. 현재 읍사무소 위치가 예전에 담양군청 자리였다.


시장 근처에는 야메과자(눈깔사탕)을 만드는 공장과 참기름 짜는 가계도 많았다.


가수 주현미의 아버지도 이곳에서 잠깐 살다가 갔다.


닭전머리에서 좀 내려 가 양각다리 중간 지점에 야외 씨름장이 있었는데 장 서면 저녁에 씨름대회가 열려 우승상금으로 황소도 줬다. 

#담주리·객사리 담양시장 전성기
▲제보자=김성수(1943년생)


▲줄거리=담주리와 객사리에 담양시장이 형성 되어 식량이나 생필품을 파는 전통시장 이외에도 하천을 중심으로 새벽부터 죽물시장이 열려 가까운 담주·객사리에서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상인들을 상대로 죽세품을 만들어 팔았다.


▲이야기=담주리 닭전머리는 시장이 서는데 거기서 닭을 많이 팔았다. 그래서 시장이 서는 장소를 정해서 닭전머리라고 했다. 명성극장이 있는 곳 앞이 다 미나리깡이였는데 미나리를 캐다가 팔기도 했다.

극장 자리도 원래는 물이 고이는 곳 이였다. 닭전머리 좀 지나서 올라가면 생선 파는 곳이 있었는데 우송당 자리를 영정통이라고 했다.


객사리 도정공장이 양각리로 옮기면서 여기가 벌판이 되었는데 주택가로 분가되어 자기들이 땅을 떼어 다 집을 지었다.

국진근씨 아버지가 여기서 도정공장을 했는데 동네사람들이 먼지가 난다고 하니깐  사람들에게 땅을 다 팔고 이사를 갔다.


읍사무소 자리는 원래는 옛날 일본 사람들이 목조건물을 지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였는데 1968년에 담주리로 옮겼다.


담주리도 일본 수출품으로 바구니를 많이 만들었는데 일본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거기에서 샘플을 가져오면 다자인을 보고 제작했다.


시장 안에 보면 원래는 도정공장이였는데 그 자리에 김해공장이 생겨서 엄청 컷었다. 특히 만성리 다리 우측 강가에서 공장을 엄청 크게 운영했다.


하천에  시장을 끼고 있어서 죽물 시장이 형성이 됐다. 골목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죽물시장이 끝나야 돈을 벌어가서 사람들이 시장에 가니까 죽물시장은 새벽 3시에 열었다.


새벽 4시부터는 전국에 장사꾼들이 와서 다 사가면 오전에 끝난다. 주민들은 바구리를 팔아서 그 돈으로 가족을 위해 엿거리, 고등어도 사서 집으로 돌아 갔다.


원래 이쪽은 자리 골목이 있다. 하천에도 가게가 많았다. 하천에는 주로 노상인들이 국수·밥을 팔았다. 거기에 대시랑도 있었다. 예전에 비가 오면 바구니에 흙이 묻어 신계우 군수 때 시멘트로 공간을 만들었다. 

#도정공장 빈터에 생긴 마을
▲제보자=김성수(1943년생)


▲줄거리=정부양곡조합(도정공장)이 양각리로 이사를 가고 빈터에 주택지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객사2리가 형성되고 인구가 늘었다.


▲이야기=객사리를 한문으로 쓰면 손 객(客)자를 써서 옛날에 여기 마을에는 객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처음에 여기는 집이 있는게 아니고 정부의 양곡을 도정 할 수 있는 정미소 즉 정부양곡가공조합이 있었다. 1985년에 정부양곡가공조합이 폐쇄가 됐다. 여기는 시내라 먼지가 나면 안 된다고 주민들이 이야기를 해 양각리로 이전하고 여기에 공터가 생겼다.

그 때는 아예 건물이 하나도 없었고 오직 도정공장만 있었는데 다 철거되고 평지가 됐다. 여기를 주택지로 떼어서 팔아서 내가 여기에 사서 집을 짓고 다른 사람들도 이사를 와 객사2리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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