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천년 담양, 설와 및 전통이야기 -4
(특집)천년 담양, 설와 및 전통이야기 -4
  • 담양군민신문
  • 승인 2020.04.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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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석탑
호국사

 

백제계 양식의 남산리 오층석탑
▲제보자=이규현(남, 1968년생)
▲줄거리=고려시대 때 원율현에 지방 호족이었던 이연년 형제들이 고려 왕조의 불만을 품고 백제 부흥 운동을 주도할 때에, 주민들의 의지를 모아내기 위해서 전통적인 백제계 양식을 그대로 담아온 석탑을 세우고 거기서 서원을 하도록 하였으리라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어찌됐건 오층석탑이 백제의 정림사지오층석탑 형식을 빼 닮은 거잖아요.
이게 창건된 때가 대략 고려시대 쯤으로 추정을 하는데 일설에 의하면 고려시대 때 원율현에 지방 호족이었던 이연년 형제들이 고려 왕조에 대한 불만을 품고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켜요.
후삼국이 통일이 되면서 백제 부흥운동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일어났으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요건 아주 특이하단 말이에요. 연대적으로 보면은...
근데 그 사람들이 건축했을 석탑이었을 수 있다 이겁니다.
백제에서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했다 라는 것들이 그런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인제 우리 쪽에 힘을 모아 보자. 안됐는데 그 결과로 원율현이 폐현이 되어 버리잖아요. 그래서 그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고 추정을 하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일단은 석탑이 조성된 시기를 대략 고려 때로 이야기를 하니까.
(조사자 : 고려 때는 동네 가운데에 절이 있고 그랬으니까요?)
그때 당시는 불교가 국교였으니까 곳곳에 절이 있었을 거고, 근데 어쨌든 종교가 정신적인 지도적인 역할들을 해내면서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 지방 주민들의 의지를 모아내기 위해서 전통적인 백제계 양식을 그대로 이렇게 담아온 석탑을 세우고 거기서 서원을 전부다 하도록 하고 하면서 이쪽 난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호국사 화전놀이
▲제보자=故 최영환(남, 1935년생)
▲줄거리=만성리 호국사 절에는 봄에 화전놀이가 있었는데 옛날에는 여자들은 농사도 못나갔기 때문에 사월 초파일이 여자들이 단장하고 곡식을 가지고 가서 공들이고 행사참여하고 하였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만성리 호국사 절에는 봄에 화전놀이가 있어.(옛날에는 레저, 잔치 이런 것이 없었어.) 봄에 꽃필 때 동네사람들이 뒷동산 꽃 있는데 가서, 그것이 그 당시에는 최고랄까, 하루 먹고 노는 것이여.
요즘에도 꽃 보러 많이 와. 옛날에도 겨울 내 눈 속에 추울 때 보다가 꽃을 보면 좋지.
사월 초파일이 여자들이 유일하게 나가는 날이었지.
그리 안하면 나 갈수가 없어. 옛날에는 (여자들은)농사도 못나갔어.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애들 키우고 했지.
초파일 때나 되어야 많은 사람들이 같이 가지 여자들이 단장도 하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절에 갈때는 뭐를 가지고 가야 돼. 옛날에는 곡식 쌀을 가지고 갔어.
그래서 절에 가믄 공들이고 행사참여하고 했지.

‘성 안에’와 ‘물 건너’이야기
▲제보자=故 최영환(남, 1935년생)
▲줄거리=담양읍 경찰서를 기준으로 천변리, 객사리, 지침리, 담주리 4개리만 ‘성 안에’라고 하고 다리 건너는 ‘물 건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조사자 : 여기서 약국하신 지 오래되셨나요?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담주리에서 만성리 가는 다리 이름이 만성교인가요?)
1955년부터 고려약국을 했어. 만성리인게 만성교지. 그 지역이름을 많이 따. 그래서 만성교라고 했지.
(조사자 : 담주교라 할 수도 있잖아요. 양각리 다리도 담양교라고 써졌는데 왜 양각리 다리라고 부르지요?)
담양읍 경찰서를 기준으로 4개리가 천변리·객사리·지침리·담주리, 거기만 ‘성 안에’라고 해.
저기는 나쁘게 말하믄 ‘물 건너 사람’이라고 혀.
다른 곳은 다리건너는, 물건너 놈이라고 혀. 좀 한시하고 차별하고 그랬지. 그래서 그쪽 이름을 따서 한 것 같애.
향교리는 향교다리, 만성리는 만성다리, 양각리는 양각다리(담양교)라고 말했지.
그러니까 그쪽을 우대한다고 할까, 생각한다고 할까. 좀 못살아서.
옛날에는 변두리가 못사는 사람들이 살았었지. 요새는 변두리에 아파트가 많이 생겨서 바꿔졌지만···. 옛날에 만성리는 농토가 없어. 땅이 많은 사람이 부자여.
공장이나 사업체가 없었으니까 생산된 것이 농토에서 나오지 농사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들었지.
돼지를 기른다든지 닭을 기른다던지 부업이 없었지. 노동으로 벌어먹고 살았지.
만성리는 부채마을이었어. 김대석씨가 명인인가 되지.
(조사자 : 만성리 다리쪽에 시장이 서서 돈 많이 벌지 않았나요?)
시장은 역사적으로 보면 옛날에는 돈이 없었어. 화폐가 물물교환이여.
자기가 난 것을 가지고 와 시장에 적당히 옆에서 얼마 받아라 얼마 받어라 해서 자기가 가진 물건하고 살 것을 바꿔.

양각다리 이야기
▲제보자=국형준(남, 1963년생)
▲줄거리=양각다리에 당산나무와 국승준씨 공덕비가 있으며, 예전에는 물귀신이 아래로 끌어당겨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양 양(養)자에다가 뿔 각(角)자, 양의 뿔같이 생겼다고 양각리라고 이름 붙여졌어. (담양에서 양각리 쪽으로 가는 다리를) 지금은 담양교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양각교, 혹은 양각리 다리라고 했지.
양각다리 아래 당산나무는 오래 되었지만 당산제는 지금은 지내지 않아.
국승준씨 공덕비가 하나 있는데, 마을에 공헌을 했다고(호가 송안이다.) 마을주민들이 세워줬어. 위친계라는 거는 옛날에 주로 상여를 멜 때나 했지 지금은 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어갔지.
장례식장이 생기기 전에 집에서들 장례를 치를 때는 다 상여를 맸지. 50명 정도 될 거야. 국승준씨가 황금들을 다 끼고 있어서 다 잡고 있었지.
사미정 마을은 옛날에는 재미정으로 불리었고. 지금 가산골프연습장 옆에 고아원이 있었어. 양각산 공원 밑으로 냇가에(사람이 죽어서) 빨간 깃발이 쳐져 있었지.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 물이 차디 차가지고 귀신인가 뭔가 모르겄는데 아래로 끌어 땡긴다고 했어. 물이 차서 대부분 심장마비로 죽었을 거야

양각리 대자리 공장
▲제보자=최옥자(여, 1930년생)
▲줄거리=양각리에서는 죽세공예로 대바구니도 만들고, 대나무 자리도 만들었는데, 대나무 자리 공장에서 일해서 아들을 다섯이나 가르쳤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여기는 바구니도 많이 했지. 돗자리공장(대자리공장)도 있었어. 돗자리 공장이 있었는데 (요즘에는)안 팔린 게 없어졌어.
우송골에서 씨드(대나무 자리)만들었지. 아들 다섯이나 다 가르쳤지.
아저씨가 뭐냐 일찍 시작해서 돈도 많이 벌었어.
내 생각엔 니스하고 신나하고 무늬 놀라고 쓰는디 60에 돌아가신 이유가 전날 술을 많이 먹고 신나 작업을 하다가 신나가 스며든 것 같애.
서울, 부산으로 고급자리라 전국으로 나갔어. 씨드(대자리)공장에 직원은 열 그저 다 되었지. 솔챈히 오래 했어. 양각리서 씨드를 두 집이나 했는디, 한 집은 객사리로 이사를 갔어

정자나무가 많은 마을
▲제보자=이유순(여, 1937년)
▲줄거리=현재 400년 넘는 나무가 관방제림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정자나무가 있어서 동정자라 했으며, 석당간 부근에서부터 마을 입구가 예전에는 모두 강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한다.
▲이야기=옛날에 동쪽에 마을이 있었는디~ 정자나무가 커서 그 나무를 보고 동정자 마을이라고 했어.
나무가 400년 넘는다 그래.(요리 나무가 쭉~ 기여. 저 끝에서부터 여기까지 쭉~ 있어)옛날에 저그 탑돌이 한 데(오층석탑 부근)가 강이데요.
 (그란게로 저~ 그 종대(석당간)가 있고,종대가 있는데까지 마을 입구가 예전에는 강이었다고···.)시집오니까 없어져버렸어요.
관산보 수리답이 있어서 연화촌 가는 쪽에서 그 물로 농사를 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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