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년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8.천년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 자료제공=담양문화원
  • 승인 2020.05.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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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타리 이야기
▲제보자=김우웅(남, 1946년생)
▲줄거리=쌍교는 철도하고 다리하고(두 개니까)이름이 쌍교이고, 한타리는 다리가 하나뿐이어서 한타리라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우리 여기 밑에 마을에 제월리 있잖아요. 거그 왼쪽에가 집이 몇 채 있었어요 마을에 세 집이 있었는데 상여집이 있었어요. 거기만 가면은 머리골치가 아파. 그리고 버스가 거기서 섰어. 그 옆에 가게도 있었고 거기만 가면은 머리꼴이 으쓱으쓱해. 어렸을 때 얼마나 무서웠겄소.
내가 공부를 하다보니까 한타리를 왜 한타리라 했나. 쌍다리라 안해. 여그는 다리가 하나고. 쌍교는 철도하고 다리하고(두 개니까) 이름이 기가 막히게 잘 지어. 가만히 인자는 이해를 하겄어. 한타리도 다리가 하나라고 해서 한다리라고 해
버스가 여그로다녔으니까. 이쪽으로 가면 오봉리 가고, 그쪽으로는 무정면이고, 거기가 경계선이니까 노름방이 들어설 수밖에 없어. 술집이 들어설 수밖에 없어. 삼거린게 그때는 한타리가 엄청 컸어.

면앙정골과 백세배미
▲제보자=국용환(남, 1947년생)
▲줄거리=면앙절골 곽씨의 휴식처를 면앙정 송순이 그 자리를 다시 지어서 면앙정이 되었다고 하며, 송씨 집안에서 백세배미 농사로 송순 제사를 지낸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면앙정골이라고 마을 뒷산에서 부자가 살았다더만, 거기 근방에서 면앙정이 옛날에 곽씨의 휴식처로 만들었는데 면앙정 송순이 그 자리를 다시 지었다든가. 면양정이 되았다고 송순이 벼슬 되아 가지고 내려와서. 그런 말을 들은 것 같더라고. 그 뒤로 집안에서 시제를 모시고 그러더라고. 지금도 행사는 한데 지금은 행정기관하고 해서 행사만 하대요. 백세배미는 송순씨 제사를 지낸다고 제답이라고 그 농사를 지어가지고 제사를 지내지. 그 집안 문중 답이여.

봉산 곡정마을 유래
▲제보자=국판환(남, 1950년생)
▲줄거리=지금은 길이 잘 나있지만 예전에는 마을 들어오는 길이 구불구불해서 곡정리로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이다.
▲이야기=확실하게는 몰라도 당산나무 큰 거를 보면은(마을이 생긴 지) 400년 정도 됐을 거요. 최희순 씨 할아버지가 대추리서 살다가 여기로 왔어. 그 양반이 일을 봐 줄려고 창수 씨 할아버지가 서사로 들어왔고, 장씨하고 김씨하고 해지고 면지를 했더만.(거기가 입향조가)장씨로 알고 있지. 인동장씨지.(조사자 : 왜 곡정마을이라 했나요?)
마을길이 들어오는데 그때는 구루마길이지. 길이 꾸불꾸불 해가꼬 굽을 곡(曲)자를 넣어가지고 정자정(亭)를 넣어가지고 그랬지. 지금은 아주 고속도료여 반듯반 듯 혀. 영산강하고 오리천이고 그 사이에 마을이 있지. 여기 모정 이름이 쌍호정이여. 왜 쌍호정이냐면 영산강하고 강이 양쪽으로 흘러. 그래서 쌍호. 여기에 현판이 써있어.
여기 가면 그전 길 마항리 농지정리 하기 전에 수통(콘트리트 흄관)도 있고 놋강이 묻어져 가지고 있어. 거기 나오면 거기에 귀신도 나오네~ 뭣하네 좀 무서워했어. 건너는 다리 지나서 거기서 길이 구불구불하니 우리 마을까지 왔어요.
큰 냇물이 영산강 여그가 항상 물이 많죠. 물길이 멀고 여기는 물이 많이 나올때가 없잖아요. 그전에는 댐이 한번 터져가고 그물이 여기 마을까지 와버린 일이 있었어.
보가 샛바우하고 다리삼보가 있어 저기 물길 따라가면 강쟁리 보 있는데에 있어.

봉산 도고마을 유래
▲제보자=최홍직(남, 1935년생)
▲줄거리=국세를 걷어서 놓는 창고가 이 마을에 있어서 창터라고 불렀고, 도고정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도고리라고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처음에 여기는 전주이씨들이 와서 창설을 했다는 말이 있어요. 한 400년 됐어요. 지금은 전주이씨가 일부 살다가 바로 앞마을 제월리로 가서 마을을 창설(창촌)을 하고 일부는 여기 있고, 밀양박씨도 있고, 지금은 여러 성받이가 있지. 지금은 밀양박씨가 많고. 그 뒤로는 광산김씨가 들어오고, 의령 남씨들이 들어오고 그렇게 하고···.
도고정이라고 불렀어. 여기가 어찌 창터라고 했냐면은 국세를 걷어서 놓는 창고가 여기에 있었다는 말이 있어요. 옛날에 몇 년 전에 논을 갈고 하면은 기왔장도 나오고 했다고. 정성기네 집, 요 근방에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논으로 되아버렸어요. 옛날에는 도고정이라고 하고 지금은 도고리로 하고 있지. 시정에 큰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를 잘라버리고 다시 세워놨어.

봉산 서봉마을 유래
▲제보자=김우웅(남, 1946년생)
▲줄거리=마을 이름이 서봉인 까닭은 형국이 봉황이 서식하는 곳이라 해서 부르게 된 이름이며, 그 이유로 성장을 하면 빠져 나가야 한다는 말이 전한다고 한다.
▲이야기=마을 형태가 깃들일 서(栖)자 새 봉(鳳)자 한자로 하자면 새를 기른 터다해서···.
(조사자 : 봉황이 서식하는 곳이라 해서 서봉인가요?)
아마 그러겠죠. 기를 서(栖)자, 그런 이야기를 헙디다. 어른들이 한문으로 봤을 때 그러니까 여그서는 무조건 튀쳐 나가야 된대요. 터를 잡지 말고 성장을 하면 빠져 나가야 된다고···.
(조사자 : 지석묘가 있다던데요?)(그것이 뭐이냐면 경지정리가 되다 보니까 그 밑에 옛날에 현종이 아버지 농사짓는 데가 거기 가서 샘이 있었는데 그릇이 많이 나왔다 하더라고. 파고 보니까는 물이 나와서 사용을 했다고 하더라고. 샘이 있었지 않느냐 그래서, 그릇이 나오고 그랬다고 돌이 큰 돌로 되가지고 다리를 놓아놨어)
기왓장도 많이 나오고 (예전예)곽씨가 살아서 밭을 하다가 보면은 기왓장이 나옵니다. 마을터였습니다. 불과 몇 년 안 된가 싶어요 부자가 살았다고 하데요
봉산면 유물산포지 남동쪽에 있습니다. 거기서 밭을 갈면 기왓장이 많이 나왔습니다. 마을이름이 곡성에 제월리에 서봉이 있습니다.
그 한사람이 여기 마을 지명을 지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입석은 마을입구 두 개가 있는데 지금은 한 개가 있습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처럼 마을을 수호해주니 두 개를 세웠겠죠. 작업장을 지으면서 입석이 하나 없어져 버렸지. 하나는 지금 마을 입구 정자 옆에 있습니다.
지금은 20호 정도 됩니다. 예전에는 43호까지 살았습니다. 바구니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가마니를 많이 짰습니다. 그리고 덕석도 짰죠. 가마니는 바구니 하기 전에 가마니를 하다가 가마니가 없어지고 죽물을 많이 했습니다. 죽물을 하다가 문발 나이롱발을 했습니다. 플라스틱발을 신학리서 처음 나왔거든요. 그래서 손으로 많이 절었습니다. 대문발은 제가 했었습니다. 비닐발을 하다가 대나무로 했습니다. 어찌나 대나무 발이 힘들던지 용꼬 플라스틱 발을 했습니다.

마항마을 유래
▲제보자=국용환(남, 1947년생)
▲줄거리=마항마을은 말모가지 형상으로 되어서 마항마을이라고 했으며, 전주이씨, 평산신씨 등이 많이 살다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여러 성씨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마을이 말모가지 형상으로 되아서 마항마을이라고 했어요. 어른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전에 전주이씨가 많이 살았어요. 평산 신씨도 살고, 밀양박씨하고 많이 살았다더만요. 지금은 그전에 사신 양반들은 다 돌아가시고 여러 성씨들이 살고 있어요. 이씨들은 다 나가버리고 한집 남았네요. 마을 인물로는 군의원 했던 분 있고 축협 조합장 있고 손연수씨는 살아 계신디 이사가버렸어요. 신상철 장군 소장이라고 별 두 개
마을 당산나무는 400년 된 것같은디··· 당산제를 얼마 전에도 하자고 젊은 사람들이 상당히 힘들게 말을 하더만, 맘을 깨끗이 하고 정성을 들여야 돼서 하지 말자고 해서 안했어요. 예전에는 했다고 우리 아버님이 계셨을적에는 지냈는데 제가 커서는 안 지냈습니다. 제가 곡정리에서 태어나서 요리 이사를 왔습니다. 당산나무는 이(모정 옆) 나무여. 쥐불놀이는 이장이 옛날에 사진을 모아서 이장이 사진전을 했어. 한 2년 전에 달집태우기도 같이 하고 그랬어.

봉산 신학리 유래
▲제보자=진활연(남, 1935년생)
▲줄거리=심곡사 절터를 해본산 또는 달본산이라 하는데, 달본산 아래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이야기=신학마을과 학동을 합하면 학이 날아가는 모습의 학터라는 지명이야기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신학리가 신곡사라는 절이 있었어. 신곡마을이라고 했지. 나중에 계명되아서 행정구역으로 신학리하고 학동하고 합해서 신학리라고 되았지. 마을에 황씨, 여양진씨가 들어왔지. 지금은 여양진씨 이외에도 많은 성씨들이 살지. 남평문씨도 살고 수북 중부동서 온 사람들이지 진주 강씨들도 있고, 박씨도 있고···.
동쪽으로 가면은 달본대가 있는데 망월봉이라고 해. 옥천골 거그 달본대를 말해
신곡사라는 절을 어느 도사가 지었어. 거기서 부터서 그 사람이 살았어.
그래서 신학리가 한 집 두 집이 모여서 동네가 형성되었지. 절터는 저기 위에 해돋이 본대 달본산이라고 해. 여그 동네 사람들이 달본산에 아래에 위치해 있어. 나란히 묘똥 같은 것이 있어서 올라가서 보면은 달이 올라오고 아침에는 해돋이도 보고 신곡사의 스님들이 봤다고 봐야지. 우리가 아는 바로는 신학리 학동을 합해가지고 나는 날개가 되아 있고, 나는 모습을 학이 날아간다 해가지고 학터라고 그런 전설이제. 그런 형국이 되았어. 학이 학동하고 신학리를 싸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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