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11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11
  • 자료제공=담양문화원
  • 승인 2020.06.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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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리 입향조 흥양 이씨

제보자=이원종(, 1928년생김대권(, 1937년생)

줄거리=연동리는 흥양 이씨가 입향조이며 그 후손 이원종씨 집과 연동사터에 흥양 이씨 유적들이 남아있다.

이야기=흥양 이씨, 두 번째로 광산 김씨, 세 번째로 함양 박씨가 들어오고···.

맨 첨에는 지동리였다가 연못이 있어서 꽃 연()자 연화동을 써서 연동리라고 했지

칠성제를 지냈지. 말하자면은 일 년 내내 건강하고 그때는 농사천하지 대본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정월보름날 농사지어가지고 당산나무가 고목이 되아서 죽어서 없어져 버리고 새로 나무를 심어서 당산제를 지내다가 전부 사람도 없고 고령화 되어분게 거의 당산제를 하나 지낼려고 법축을 다 갖출라면 우리가 30명 이상을 가져야 하는데 그 인원이 없어요.

그 인원이 못헌께로 폐쇄 시켜버렸지. 중간에 폐쇄 시킨 지가 10년 넘었기나 했을 거여.

(조사자 : 근행석이 어디 있나요?)

저기 앞에 있어 돌 저것이 기여. 여기 우리 집 마당에 있어. 저 돌이 지금까지 있어.

(조사자 : 저렇게 큰 돌을 치마폭에 쌓아왔다고 한가요?)

그것이 전설(전설에 의하면 김덕령 장군의 처인 정경부인 흥양 이씨가 친정에 올 때 치마폭에 쌓아가지고 온 돌이다.)인디 달구지라고 있잖아

달구지로 끄꼬 갔다가 왔다 혀. 치마를 덮고 달구지다 끄고 왔어 이거를 보러 모다 와.(학자들이나 학생들이 보러온다는 이야기)

봉산제를 지금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눈이나 비가 와서 노서에서 못 지내면 가을(1015일경 보름날)에 제각에서 모십니다. 양복 입고 제관들하고 이씨 집안에서 30여 명이 모여서 지냅니다. 제비는 이씨들 문중문답이 있습니다. 제주는 산 관리인이 하고···.

이인경은 충장공 처 흥양 이씨하고 남매간이여. 내가 사는 이 집이 충장공 처갓집이여.

연동사는 1919년 흥선대원권 서원철폐로 인해서 없어져 버렸어. 지금은 터만 남아있어. 여 집 바로 옆에 있지. 효자비가 다 거기가 있어. 연동사가 폐쇄되고 거기로 다 모아써 죽포공 할아버지(묘소에). 일본 놈들이 묻었다가 다시 파서 발굴해서 세워놨어. 비문내용을 보고(일본을 비난하고 있다고 해서)일본 놈들이 묻어버렸지. 지금은 발굴해서 현재 연동사 터에 보존하고 있어.

죽림마을 유래

제보자=이진채(, 1934년생)

줄거리=대가 많아서 죽림마을이라 했으며, 80마지기 짓는 담양 두 번째 부촌이라 죽세 일도 안하고 지금도 다른 일은 웬만하면 안하며, 검사, 판사, 교육자, 예술가 인물들이 많이 나고 마을에 느티나무, 동백나무, 벚나무도 함께 잘 살고 있다.

이야기=나씨, 엄씨 말은 대강 들었어요. 지금은 아무도 안삽니다. 송천 용씨가 많이 삽니다. 여서 성받이가 삽니다. 지금은 50가호 됩니다.

저 어렸을 적에는 사십 몇 호 살았지요. 그때는 대서반이라고 했는데 대가 많은 마을이라 대 죽()자 수풀 림()자를 써서 죽림리라고 했어요. 전부 돌려서 대밭이에요.. 저 어렸을 적에는 대서반이라고 했습니다.

송천 용씨가 많이 있어요. 그 다음에는 능선구씨 그리고는 남원양씨들 몇 집이 살고 그래요 그 외에는 세네 집씩 살고 있고요. 각성이 많이 살아요.

여기 나무는 맨 처음 엄씨와 나씨가 들어와서 심었데요. 동서남에 심었답니다. 제가 있을 때는 당산제를 안 지냈어요. 그런 설은 들었어요. 도둑이 들어오면 못 걸어가게 세워서 못 걸어갔다는 설이 있어요. 당산나무가 영험하여 도둑을 지켰다는 말을 들었어요.

뱀골이라고 그랬어요. 지금도 뱀골이라고 골짝을 부르고. 유산리(쌍교)냇가까지 물이 내려가는데 거기를 뱀골이라고 그래요. 뒷가리라고 부르제. 만덕제도 매앰골 옆에 능선 큰 것이고. 창평까지 능선이 연결됩니다.

비암저수지 가는 데를 시술제라고 그러지. 젓골도 있고···요짝 저수지 옆에 꼴짜기 옛날 어르신들이 농사를 잘 지을려면 달방물냉이 가서 달을 보면 농사가 잘 지어진다고 했어. 달은 본다 해서 달방물냉이라 해. 농사 잘되라고 소원을 빈다는 것이지.고개보고 뒷제 문고개라 그래. 만덕제 옆에 쉬운산, 산이름이 쉬운산. 화장골도 들로 나가는 골짝이름이고, 나나리 방천 또랑을 나나리라 해. 작은골은 산이름, 골짝이름이야 연동하고 죽림하고 합해진 도로 밑에 들로 내려가 삼지리 가는데 고쪽으로 통시암거리라 해. 거기에 통시암이 있는데 물이 차고 시원하다고···.

(조사자 : 옛날에 음악 하시는 분이 두 분 계셨다면서요?)음악가 구본선, 봉산초등학교 교가도 그분이 짓고. 우리 마을 리가도 그분이 지어주고. 우리 동네엔 예술가가 고로고로 있어. 화가는 대법원 판사님 이성열 씨 아들 이수현 학교 선생님이니까. 여기 은행장도 있고, 의사도 있고···.

마을 시정 옆에 보호수와 당산나무인 느티나무 위에 벚꽃이 살고 있어.

가운데에서 잘 살아. 느티나무하고 그렇게 잘 살아. 느티나무도 살고 벚꽃도 살고 같이 잘 살고 있어요. 홍천 용씨가 해남 어란서 왔어. 그분이 판사님 장인이여. 용씨가 들어오기를 해남서 들어오면서 동백나무를 목포에서 열차를 싣고 왔어요. 그래서 우리 동네에 심어 놓은게 있지.

 

연산마을 형국과 마을형성

제보자=이광우(, 1928년생)

줄거리=마을형국이 빨랫줄에 제비가 앉은 형국이다 해서 연산정이라 불렀으나, 제비 연()자 쓰기가 복잡해서 그러할 연()자를 써서 연산이라고 한다. 송순 선생 큰 아들이 해관이 손이 없이 죽으니까 전주이씨 집안 외손 이정으로 제사를 모시게 해서 여기 마을에 들어왔으며, 이 마을에 송면앙 선생 묘소가 있는 이유이다.

이야기=전주이씨가 서울에서 들어왔어. 안동 권씨가 들어오고 전주이씨가 들어오게 된 동기가 면앙 송순 선생 큰아들이 해관인데 그분이 손이 없었어. 큰아들인데 손이 없어서 큰아들이 죽으니까 제사를 모셔야 하는데 아들이 없이 죽으니까 지금 같으면 조카가 제사를 모셔야 할 것인데 그때는 외손으로 모시게 할란디 외손을 찾으니까 전주이씨 집안이야. 그래서 그분(이정)으로 제사를 모시게 했어. 그래서 여기 마을에 송면앙 선생의 묘가 있고 그 전주이씨 제사를 모시는 아들 묘도 있고···. 그 다음에 안동 권씨 들어오고 울산 김씨 들어오고. 그 뒤로 심씨가 들어오고. 지금은 여러 성이 살고 있다~

(조사자 : 여기는 왜 연산 마을이라고 했나요?)

마을형국이 빨랫줄에 제비가 앉은 형국이다 해서 제비 연()자를 썼다니까. 제비연자 쓰기가 복잡하거든 그래서 그러할 연()자를 써서 연산이라고 해. 마을의 형국도 제비집 모양으로 되아 있어. 옛날에 우리 마을을 연산정이라고 했어. 그 당시에는 제비 연자를 썼어.

송면앙 아들 제사를 모시는 그분(이정) 손이 내가 기고, 사당에 모신 분은 그 뒤에 분이여. 나로써 5대조 할아버지인데 완원군손 칠현, 호는 기재공 사당이제. 그분이 학자로써 제자를 많이 길러냈어. 그 제자들이 사당을 만든 것이여. 시방은 이런디 예전에는 봉산면의 중심마을이었어. 우리 동네 사람들은 형제간같이 인심 좋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게 자랑이제.

 

송산마을 지명들

제보자=김보윤(, 1944년생)

줄거리=장구터, 새터, 장골, 용두봉, 조철영부사비 등 마을 지명에 관련한 이야기들이다.

이야기=진주강씨가 제각이 국도 넘어에 바로 육교 앞에 보면은 고가 옛날 오리탕집에 그 밑에가 제각이 있어요. 신학리 강씨들 제각이지. 지금은 식당 안해요 그리고 지금 진주강씨 선산이 있어요 창평으로 가다보면 김남준씨 거시기 있는데 흥양이씨 제각이고 그 안에 제작이 있어요 기와집 맹키로 근데 관리를 안 하고 그러니까~~광산김씨 제각은 여기 바로 너메~~새터는 여기 우리 마을 위로 올라가면 거기가 집이 네 채인가 있는데 거기가 새터라고 하지요.요 밑에 담양애꽃(옆에)인삼 심군데가 장구터에요. 마방집 할 적에 거기 시골장이 있었어요. 그래서 장구터라고 했대요. 그 터를 보면은 평지 맹키로 되어 있어가지고···.

노루 장()자를 써서 저수지 위로 해가지고 축협 퇴비공장자리가 장골자리예요 노루가 지금도 많고 옛날에도 있었는가 봐요 민둥산일 때는 동물들이 없었는데 지금은 멧돼지고 노루고 깡냉이고 멋이고 다 뜯어먹고 가버려요 굴다리로 들어와 가지고 송아지만한 놈이 암놈 수놈 두 마리가 들어와 가지고 어쩔 때는 세 마리도 들어오고··· 수로에 빠져버리면 못 나간단 말입니다. 많이 살았어요. 고라니가 많애요. 멧돼지가 어제는 고구마 다 뒤져 버려가지고···.

용두봉 거그가 무제등이 거기에 있지. 우리 있을 적에는 호랑이가 있다는 소리가 들었는데 대덕면 아주 산중에서 완전히 없어지든 안했어요. 내가 어려서. 늑대 여우는 봤지. 개호랑이는 여기서 목매 놔서 잡기도 하고 그랬고. 산토끼도 무지하게 겁났고. 여그서 토끼고기를 잡아다가 먹고 그랬죠.

예전에는 정월 보름이면 걸궁을 금줄 걸고 음식 가지고 가서 했는데 지금은 당산나무도 비어 벌고. 70년부터 안했을 거예요 새마을 사업 한 뒤로부터는 없어져 버렸어. 그네타기, 그때 큰 버드나무가 무지 큰게 있었는데 단오 때 그네를 걸어서 그네를 탔어요. 짚으로 새끼줄을 사내키줄을 꼬아가지고 공동으로 크게 해서 한 2년에 추석 때도 하고··· 윷놀이는 지금도 서울서 오면 부락에서 모여서 지금도 합니다. 지금도 마을을 사람들이 외지인들이 오면 편짜서 합니다.

(조씨)손들이 없는가 봐요. 그래가지고 고속도로를 내고 국도를 내면서 도로 가상에 그 비(조철영 부사비)가 있었는데 그 손들이 없어서 없앨려다가 우리 동네에서 파다가 우리 마을 앞에다가 고속도로 동네 입구에다가 세워놨어요. 이것을 손들이 자기네들 조상들은 이렇게 거시기 한 분이라고 찾아오면 되는데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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