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20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20
  • 담양군민신문
  • 승인 2020.10.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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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 시장

 

창평 삼지내 슬로시티 이야기
▲제보자=박희연(여, 1968년생)
▲줄거리=삼지내가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전통음식과 돌담길, 수로사업을 해서 옛날방식으로 복원되었다. 슬로시티의 정신은 천천히, 느리게 살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이야기=(조사자 : 창평이 왜 슬로시티로 지정이 되었으며, 슬로시티의 정신은 무엇인지 이야기 좀 해주세요.)
슬로시티가 지정 된지는 2007년 12월 1일이죠. 이곳은 돌담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꼬 마을 사람들이 옛날에 만들었던 전통슬로푸드인 엿을 그대로 만들고 있는게 너무 좋아서 제안을 했다고 하드라구요. 이 자체만으로도 슬로시티답다 그래서 이곳을 지정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해서 마을분하고 군청에 가서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주민의 노력 때문에 슬로시티가 지정이 됐다고 봐야죠.
돌담길의 역할은 아주 크죠. 돌담길이 없었으면, 돌담길이 훼손되어 있었으면, 아마 슬로시티지정에 어려움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돌담길은 1793년, 우리 창평 현청이 고서에 있다가 이쪽 창평면으로 이사 오면서 그 현청이 생기고, 마을이 형성됐죠. 그때 만들어진 돌담길로써 한 4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400년의 역사와 생태환경이 뛰어나고 거기에 사는 마을 사람들의 생각, 양반정신하고 아까 말씀드린 항일정신, 이런 정신문화에서도 굉장히 잘 보존되어 있고, 또 하시는 일들이 옛날 전통음식문화를 살려내고 있고 이러한 것들이 삼박자가 맞아서 슬로시티 지정되는 데는 무난하게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이후에 슬로시티 이후, 2009년부터 정부지원금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2007년 때에는 바로 지원금이 나오지 않았구요. 이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또 보존비가 필요하고 그 복원공사를 할 필요가 있어서 지금 모양의 흙길, 이전에는 시멘트 도로였던 부분을 시멘트를 파내고 다시 흙길을 만들고, 그 다음에 배수로, 물길이 보이지 않는 덮개돌로 덮혀있던 곳을 다시 오픈해서 돌담길이기 때문에 그 물길도 돌담으로 쌓여 묻혀가지고, 돌길에서 흐르는 물처럼 이렇게 만들었구요,
지금 전통가옥으로 맺어진 데는, 전통가옥이라기 보다도 도지정문화재로 된 데가 3개 밖에 안돼요. 고재선 가옥, 고정주 가옥, 고재환 가옥. 그 세 가옥도 도지정문화재로 밖에 지정이 안된 이유는 전통 한옥의 형태가 아니라는 거죠. 근대에(들어와서)1920년경에 지었기 때문에 전통한옥으로 되어있지 않고 문화재 중에서도 등급이 낮은 민속자료로써 가치만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그 세 가옥만 지금 민속자료로 되어 있고 그 외에 고재욱 가옥도 똑같은 구조의 가옥이고, 나머지 부분은 지금 거의 없다고 봐야죠.

창평시장과 국밥집 이야기
▲제보자=김정남(여, 1950년생)
▲줄거리=창평시장은 110여 년 된, 초등학교와 더불어 오랜 역사를 갖는 전통시장이다. 지역 사람들이 농사지은 물건들, 고구마, 호박 한과 등을 팔고, 특히 국밥집 등이 주류를 이룬다.
▲이야기=(조사자 : 창평시장이 생긴지 얼마나 됐을까요?)오래 되았제. 100년도 넘었제. 저희가 와서 산 지가 지금, 45년 46년인디. 저희가 쬐까 어려서도, 이렇게 장에를 따라 온 기억이 있어. 어려서 지금 제가 70이 다 되어 간디, 100년 넘었다고 봐야죠.
(학교가 100년 되었은게, 학교가 생긴다는데 장이 없겄소. 그것을 얼른 깨달아야 돼. 창평학교 초등학교가 100년이 되었어)
학교가 105살 될 거여. 학교가 110년 이상 됐을 거요. 저희는 여기가 고향이 아니고, 전통시장이 저희 올 때는 굉장히 컸습니다. 그 소전도 있고 돼지전도 있어 가지고 엄청 컸어요. 근디 어느 중간에 그렇게 국밥집 들어오면서, 그 돼지전도 없어지면서 국밥(집이) 들어와부렀제. 소전도 없어져불제. 하면서 재래시장이 좀 죽었죠. 그 전에 재래장이 컸는데 옛날에는 엄청 컸는데, 죽어 버리고 지금 많이 바뀌었죠. 옛날 안 같고.
(조사자 : 그때 창평시장 규모가 어디에서 어디까지 펼쳐졌을까요?)
지금 현재 주차장까지는 다 펼쳐졌죠. 고등학교 저쪽 편으로 고등학교 앞에는 기와 공장이 있었어요. 기와 찍는 공장. 공장이 있는디, 지금 다 찻집 생기고 헌데가 기와 공장이었어요. 요쪽으로는 시장이었고.
소전이 지금 현(현재) 주차장. 현재 장터 주차장이 소전이었어요. 돼지전, 소전이 거가 기였어.
(조사자 : 그러면 여기서 직접 잡았어요?)
그 앞에 가 있었어.(거기서 잡았어) 소는 잡았는가, 몰라도 돼지는 잡았을 거시어. 그래서 도살장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들었는디. 지금 재래시장이 많이 죽었지요.
(조사자 : 창평국밥이 왜 유명해졌어요?)
근게, 그건 잘 모르겠네요. 첨에 원조 국밥이 한 군데 생겼었거든요. 근디 인자 그 집이 하면서 국밥이 맛있다고 외지에서 이렇게 손님들이 많이 오셔요. 근게 인자 나도 헌다, 너도 헌다 히가꼬 많이 생겼지요.
[거시기 시어머니가 국수장시를 했어. 국수를 히서 판디, 맛있다고 뭐시냐 손님들이 많이(오니까) 잘 팔리고, 장사가 잘 되었거든. 그래갖고 시어머니가 돌아 가신게, 맏며느리가 채잡고 헌디. 그래갖고 원조국밥이 그래서 원조국밥이여. 시어머니한테 물려서 했다는 거시기로 해서, 근디 잘되야요. 그리고 맛있게 잘 혀.

수의(壽衣) 이야기
▲제보자=조순임(여, 1932년생)
▲줄거리=한복을 만들어 오시다가 수의를 만드셨는데 지금은 팔십이 넘어 만들지 않는다. 옛날에 수의를 만들었던 과정을 이야기 하셨다.
▲이야기=옛날에 창평면에서는 혼자 했어요. 다 만들어서 해다 입었어요. 근디 지금은 내가 몸이 아픈게 누가 해달라고 해도 못해주고, 미안한 마음이 항시 있어요. 마음대로 못해, 몸이 아픈 게.
(조사자 : 수의를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수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 해 주세요.)네. 사람이 이렇게 숨이 마지막 가는 길 아녀요? 그때 입고 있는 옷을 다 벗기고 마지막 입히는 옷이지요. 마지막 가는 길에 입힌 옷, 남자 옷은 스물두가 지 것, 여자것은 열아홉 가지 것 그래요. 그걸 혼자 다 재단해서 했지요.
우에 옷부터 도포, 두루마기, 바지저고리, 주적삼, 팬티, 머리에 남바우, 머리에 쓰는 남바우요. 얼굴에 덮기,, 얼굴싸기, 또 조발량이란 것이 있어요. 열 손톱을 이만썩하니 지어갖고 열 손톱을 다 짤라서 주머니에 담아요. 손톱 발톱을 다, 스무 개가 들어가죠.
그렇게 하는 것이고, 손싸개가 따로 있어요. 손싸개가 따로 있고 얼굴싸개가 따로 있고, 남바우 따로 있고, 속적삼, 저고리, 남자 것이요. 시방 바지저고리, 도포, 허리끈, 보선, 댓님, 행근, 전부 다 들어가요.
(조사자 : 여자 것은 열아홉 가진데, 남자 거에서 없는 것은?)
여자 것은 인자 남바우, 얼굴싸개는 똑같아요. 조발량, 버선 같은 거, 다 똑같은디. 뭣이 없냐믄 댓님, 허리끈이 없어. 여자는 저고리, 치마, 또 적삼, 고이, 팬티, 치마저고리, 두루마기, 도포. (조사자 : 고이가 뭐예요?)
팬티 입히고위에 도 고이라고 있어요. 바지하나가 또 있어.
(조사자 : 수의 만드는 재료는요?)
재료는 인자 마포가 제일 좋다고 옛날에는 마포로만 전체 했거든요. 도중에 와가지고는 마포가 비싸 불어요. 한 필에 2만원인가 그려. 한 필이라는 건 스무 자, 열아홉 자인디 2만원인가 근께, 대개 중국산 마포로도 하고 옥양목으로 많이 했어요. 옥양목으로 해 논께 깨끗하니 좋대요.
(조사자 : 한 벌씩 만드는데 보통 걸리는 시간은요?)
혼자 하면은 한 일주일 걸려요. 한 벌 다 할라믄.
(조사자 : 한사람 할 때 얼마나 양이 들어가요? 키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옥양목으로 하면 13마가 들어가요. 열세마가 들어가. 남자 거는 열여섯마가 들어가고, 마포로 하면은 일곱 피 반이 들어가고.
(조사자 : 옛말에 수의를 해 놓으면 오래 산다는데, 그런 이야기 좀 해주세요.)
여유 있는 사람은 다 해놨다가 쓰는데, 여유가 없는 사람은 인자 할 수 없이 장례식장에 가서 사 입히죠.(조사자 : 옷 한필 하는데 일주일 걸리는데 삼일장하면 어떻게 만들어요?)
삼일장하면 어찌냐고? 본인 것은 해 놨어요. 옛날에 그래야제, 어쩔 것이요. 갑자기 죽으믄, 그래도 헐지 안께 내가 해서 입어야지. 어떻게 사 입히겠어요? 근께, 천금은 이불이고 지금은요, 천금은 이렇게 마지막에 덮어 둔 것이 천금이고, 깔아둔 것은 또 홑이불이란 것이 있어요. 마포로, 홑이불은 꼭 마포로 해야 혀. 가운데 폭은 일곱 자, 일곱 치, 치수를 안 맞춰요. 네 치, 다섯 치, 일곱 치 그렇게 맞춰야지. 그래갖고 홑이불은 가운데 폭이 일곱 자, 일곱 치. 가운데 거는 그렇게 길어요. 딱 누이고 이렇게 싸거든요. 가운데 폭으로
(조사자 ; 지금은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미리 해 놓잖아요.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은 안 입었을 것 같은데.)
근께, 옛날에는 죽으믄, 그 자리에서 전부 모여서 했어요. 모여서 만들었지. 재단한 사람, 만든 사람, 그래갖고 입혀요. 그냥 어떻게 보내? 마지막 가는 길인디. 지금은 돈을 주고 맡긴디. 전에는 마을에서 초상이 나믄 마을 사람들 다 모여서 음식장만한 사람, 옷 헌 사람, 그랬죠. 근디 인자 지금은 편할라고 돈 주고 맡겨서 놔뒀다가 입히고 그래요.
(조사자 : 수의를 입히는 시간이 어느 때 입힌가요? 돌아가시고 나서 어느 정도 있을 때?)
인자, 출상할 때 출상할라고 나가요, 그때 입혀갖고 나가지. 장례식장에서도 마지막 뜰 때 입혀요. 앞날에는 안 입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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