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20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20
  • 자료제공= 담양문화원
  • 승인 2020.10.2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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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 고정주와 영학숙 이야기

▲제보자=김우용(남, 1941년생)
▲줄거리=고정주씨는 1890년때쯤 진사댁으로, 전라남북도 가장 부자라 이를 만큼 땅문서를 가득 담고 있었다 한다. 상월정에서 영학숙을 열어 영어를 가르쳐, 김성수 김병로 송진우 등 인재를 키웠으며, 의병활동이 많았던 창평에서 재력으로 도움을 주고 인재를 육성하는데 앞장섰다.
▲이야기=고정주씨는 하삼천 진사댁이라고 허는 집인디, 그 집이 우리 창평에서 열두 대문집입니다. 지금은 문이 세 개 뿐이 없는데, 아무튼 우리 전라남북도 각 군단위에서 가장 부자로 잘사는 집이여.
요런(회관방) 방에 땅문서가 한나(가득) 차 있었어. 거기 관리인들이 있었는데, 관리인들도 몰라요. 또 주민들도 몰라요. 굉장한 부자였어요.
그래서 인자 중앙부처에 고정주씨가 있다가 하야를 합니다. 집으로 내려오니까 지역에서, 할 일이 뭐 있겠어요. 그러면 그때 당시 창평은 그 유명한 의병활동. 그러니까 의병활동이라도 했으면 될 건데, 의병활동은 헐 수가 없고, 그 큰 집을 돕는 걸 해야 되고, 또 가족을 보호해야 되기 때문에 여기에 잔존으로 남아 있는데, 재력이 좋으니까 월봉산 밑에 상월정이라고, 원래는 대자암이라는 절이었어.
대자암이라는 절이었는데, 그 절이 없어진 후로 상월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가지고, 거기서 학당이라고 해갖고 인재들을 키웁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 김성수부통령(2대), 김병로대법원장, 송진우 선생 들을 공부를 시켜 거기서 학교를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옛날에 서울 동아일보 사장 고재욱 씨가 큰집이에요. 그러니까 동아일보에서 창평고등학교 시초 설립할 때, 창평의 학교역사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빠르다. 제일 빨라.(이렇게 말했어)
창흥의숙은 초등학교를 얘기한 것이고 영학숙(얘기)을 했어요. 기라성 같은 우리나라 최고들이 모여서 공부를 시키는데, 새로(운) 선생님을 영입을 시켜 가지고, 공부를 시켜. (우리나라)학문만 배운 그 시절에 영어를 곁들여서 가르쳐. 그때 당시는 영학숙이었어. 현재 녹천사 자리가 그 고정주씨 사당이여.
지금 초등학교에 가면 ‘창흥의숙’ 큰 비가(세워져) 있어. 인자 여기서는 최고의 인물들만 규합해서 공부를 시켰고, 요리 와서는 초등학교처럼 학업공부를 시켰어요. 그래갖고 의병활동의 가족이지만 그 분의 의병활동은 못하고 후예를 양성을 시킨다. 그래서 영학숙을 만들고 창흥의숙을 만들어서 지금의 우리 창평초등학교로 왔다.
(조사자 : 그 시대가 몇 년도라고요?)
예, 지금 우리 창평초등학교가 그때가 몇 년돈가. 창평초등학교 100주년 하면서 광주서석(초등학교) 다음에 광주서석 허고 1년 차이에요. 그래갖고 100주년 행사를 했어요. 비석을 세워 놨는데 지금 한 110년, 몇 년 되었을까요.
(조사자 : 그러면 1890년대 정도 됐을까요?)
우리 전라남도에서는 서석, 그 다음에 광양서북면학교, 우리 창평이 세 번째.(1906. 4. 1. 창흥사립학교로 개교함.)

 

창평 월봉산 애기당 전설

▲제보자= 김우용(남, 1941년생)
▲줄거리= 월봉산 상봉 바로 밑에 애기당은 기도당으로 바위에서는 물이 흐른다. 바위에 커텐을 친 후 흐르는 물을 마시고 소나무를 씹어 먹으며, 물을 뿌려서 아들이면 미꾸라지가 떨어지고, 딸이면 붕어가 떨어진다 했다. 지금도 그대로 유지는 되지만 잡목이 우거져 방치된 상태다.
▲이야기= 월봉산 상봉 바로 밑에 가면 애기당이 있는데요. 옛날에 애기를 못 낳은 사람, 애기 낳게(해 달라)하는 기도당이예요. 기도당.
거기 바위가 있는데, 자동적으로 깍아 내려가지고 밑에 가서 물이 있고, 물이 흘러서 그 물로 100일 기도를 하고 그렇게 했는데, 거기서 100일 기도를 하게 되면 거의가 임신을 한다, 그렇게 알고 있어. 바위에다가 커텐을 쳐요.
커텐을 치고 그 아래로 나온 물 먹고, 소나무 씹어 먹고. 그래서 여기는 명처다, 여기 와서 기도를 하면은 꼭 임신을 한다. 그래 가지고 얼마나(있다가)임신을 하느냐~
여자가 속옷만 입고 커텐을 저치고(걷고)동쪽으로 향한 다음에 가쟁이 속에다 물을 요러코 뿌려요. 밑에서 요러꼬 물을 뿌리면 그것이 전설이지만은 비도 안 오고, 햇빛이 쨍쨍 쬐어져 있응게, 그렇게 했을 때 그게 아들이면은. 옛날에 그랬어요. 우리 집에서도 마루에 여럿이 앉아 있는디, 소나기가(갑자기) 확 오니까 미꾸라지가 막 떨어지더라구요. 마당에. 인자 그것은 흔한 이야기인디, 그것은 바로 애기당에서 물을 핑기면은 하늘에서 미꾸라지가 떨어지면 아들이고, 붕어가 떨어지면 딸이다. 그래서 애기당이 유명하다, 그런 전설이 있어 가지고 애기당을(조성해 놨어요.) 아조 들어 갈 수가 없는데, 그걸 만들어 놀려고 무지하게 고생했습니다. 이번에도 가서 보니까 한 2~3년 (관리를)안 하니까(잡목이)꽉 차버렸어요.
(조사자 : 지금도 거기를 관리를 하고 있는 거에요?)
아니 우리가 길만 내 놓았어요.
(조사자 ;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예. 남아 있는디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문화원에 다 보내고 그렇게 했어요. 물이 있었거든요. 물이 흘러내린 데가 있었는디. 가서 보니까 물이 바짝 말라 부렀드라구요. 면장이랑 한번 다 가갖고(봤어요) 비온 뒤에 한번 와서 물이 있는가 확인하자 했는디 못하고 있어요. 그 물 때문에 보수를 못했어요. 군비로 해주라 했거든요. 지금은 그냥 방치 된 상태로 있어.

창평 사동마을 유래
▲제보자=박필수(남, 1939년생)
▲줄거리=사동은 마을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이 있어서 쏠 사(射)자를 썼다고 전하며, 활터에서 인골산을 향해 쏜 화살을 주워 주민들이 수입을 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사동마을 유래는 제가 알기로는 백제 때 형성 되야 가지고 마을이 시동, 사동 이렇게 창평1구로(창평리 하나로)이렇게 오다가, 해방 후에 분구가 되야서, 창평 1구는 시동으로, 창평리 2구는 사동이라고 해갖고.
사동 마을 형성 과정은 동네분이 활을 잘 쏴 가지고 쏠~ 사(射) 해가지고, 옛날에는 총이 아니고 전부 활이기 때문에 활을 연습했던, 수비군사용으로 제기했던 그런 활터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죠. 사동.
(조사자 : 활을 어디서 어느 쪽으로 쐈을까요?)
여기 창평 여기서. 우리 마을 중간에 있어. 그전에 쏜 뒤가 뉘 집 자리요? 달수양반 사는집, 아니 박홍렬이 사는집이라고 긍가. 그때 박홍렬이 산 집이 활 쏘고 거시기 허면은 고인이 된 우리 노인 양반이 그 사람이 저가서 활 쏘면 거가 지켜섰다 맞으면 동그라미 이렇게 손으로 허고, 또 틀리면 이러고 가위를 하고, 그 (활 쏜)노인은 서울로 이사 갔어. 고인이 되야 부렀어.
(조사자 : 누구네 집이라고요? 활터가?)
그 전에는 모르겄는디, 그 다음에 박홍렬이라고 그 사람이 살고 있었어.
지금 현재는 거가 이정순이라는 분이 살아요. 그 집 근처가 활을 쏘는 사격장. 목표물은 어디냐 허면은 인골산, 호랑이인, 인굴산. 그쪽에다 타깃을 놔두고 활 연습을 했다 그래요.
그러고 마을 사람이 아까 얘기했지만은 인자 여기서 쏘면 그 활을(화살을) 주워다가 이렇게 주면, 그렇게 돈을 줘서 벌어 묵고 그랬다고 전설,  전설이 아니라 그거는 얼마 전까지 그 분이 살면서 얘기 했어. 그건 분명 혀.
그러니까 이 마을이 좀 빈해. 부촌이 아니여.
(조사자 : 활을 쏜다고 그랬잖아요. 무사들이 많았어요? 아니면 선비들이 공부하다 활을 쏘는 거예요?)
그 전에 군사용이지 않았는가, 여기가 현청이니까, 무관이거든. 현령은 무관이여. 무관이니까 아마 군사용이 아니었는가, 그 생각이 들어요.
(조사자 : 활터 모습을 언제까지 있었을까요? 그걸 보셨고요?)
솔찬히 오래 되갖고 해방 후로 없어져 버렸어요. 해방 전에 있었어요. 해방 전후로 해서 동률이가 살 때까지 있었는데.

두꺼비형 고분 이야기
▲제보자=박필수(남, 1939년생)
▲줄거리=월봉산은 지네형국으로 독을 뿜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 두꺼비 형국의 고분이 마을을 지켜준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그 고분이 말멧등이라 그러고 그런데 그것이 두꺼비라.
왜 두꺼비라 그러냐면 저, 월봉산이 지네형국이여, 지네.
지네가 인자 독을 뿌리면 그것을 방비하기 위해서 두꺼비형으로 만들었다, 그런 설이 있어.
(조사자 : 고분을 두꺼비 형태로 만들었다고요?)
예~듀꺼비~(조사자 : 왜 말멧등이라고 했을까요?)말멧등은 글쎄, 대처 거기다 말을 맷겄어. 그건 뭐(조사자 : 혹시 말등처럼 생겼지 않았을까요?)근게 왜 거기다 말을 맷겄어. 요건이 더 맞지. 지네형국이니까 여기다 두꺼비를(두면) 둘이 싸우다가 두꺼비가 이긴디 그런 유래가 있어.
(조사자 : 고문이 얼마나 됐을까요?)고분이 삼국시대에 오래 됐지.(창평 생김서이나 생겼을 거여.)백제 때니까 약 한 천년(조사자 : 그럼 고분 크기가 어느정도 되는 것 같아요?)
면적이요?높이가 한 15m, 둘레가 80m, 100m는 못되고 학교 뒤에 쭉 나가면 저기 있잖아. 거, 다리, 고등학교 정문에서 한 5m만 가변 바로 보여.
(조사자 : 지금 사람들은 그거 어떻게 생각하세요?)(누가)관심 있가니. 지금 사람들은 밥 먹고 살기도 바쁜디, 학술적으로 아까 말멧둥이라고 얘기는 들었는데, (주민들은)거의가 이 두꺼비 형상이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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