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26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26
  • 담양군민신문
  • 승인 2020.12.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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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강 고정주 고택

 

고정주의 녹천정
▲제보자= 이병해(남, 1940년생)
▲줄거리= 고정주선생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미련 없이 낙향하여 후손들이 신학문을 배우지 못해서 나라가 망했다는 생각에 녹천정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침
▲이야기= (조사자 : 거기가 왜 정자 이름이 녹천정이죠?)
창흥의숙은 신학문 산실 창흥의숙을 연 춘강 고정주 어른이 1905년(고종 42년)에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이 되요. 상소(복궐상소(伏闕上蔬)를 올리고 낙향을 하지 않습니까. 그때 낙향이 11월 달이야. 낙향을 해가지고 칩거에 들어갑니다. 보기 싫다 그 말이여. 망국의 신하가 보기 싫다는 그 말이죠. 그래가지고 거기에 초막을 짓고. 그 삼 칸 정자를 꾸며 놓은 것이 녹천정이요. 얼렁뚱당 지였지.
(조사자 : 왜 녹천정이라고 했을까요?)
푸를 녹(錄)자 샘 천(泉)자 그 뭐인가 항상 찌꺽찌꺽 하니 우에서 항상 밑으로 비가 안와도 물이 흘러. 그러니 이런 것을 자연 뭐인가.
(조사자 : 녹천 고광순 선생은 사슴록자를 쓰지 않습니까?)
유천 녹천(鹿川)은 뭐냐면, 고광순 어른은 사슴록(鹿)자인데. 그건 호고. 이 양반(고정주)은 정자가 푸를녹(錄)자 고광순 1848년생, 고정주 1863년생 동시대 인물이지.
(조사자 : 동시대 인물인데 녹천이라는 말을 한자만 달리 써서 섰네요?)
항렬은 고정주(춘강(春崗)어른이 우게고, 녹천(고광순)은 밑에지. 하지만 나이는 녹천(고광순)이 우게였고. 두 분 사이는 원만했어. 그런 것 때문에 녹천(고광순)이 의병에 성공을 한 것은 창평의 내지 부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요.

창평 상산마을 학터 이야기
▲제보자= 박광록(남, 1943년생)
▲줄거리= 상산마을은 풍수지리학적으로 학터로 알려져 있다. 학이라는 새는 좋은 길조로 여긴다. 마을 사람들은 좋은 땅 기운을 받기위해 묘를 쓸 때에도 가려서 안장하고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모정도 두 개가 있다. 모정자리가 학의 눈의 자리로서 하나만 있으면 외눈박이 학이 되어 마을에 흉사가 일어날까봐 두 동을 지어 마을의 안녕을 빌고 있다.
▲이야기=(조사자 : 마을이 아담하니 아주 산새가 좋습니다. 풍수적으로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나요?)
예전에는 이 마을이 학터라고 전해 왔거든요. 그래서 이 마을은 묘를 쓰면 묘 양쪽에(망주석)돌을 못 놓게 해요. 학터라고 해서. 학 날개에다가 돌을 놔불면 마을이 안 된다 해서.
묘를 쓰면요. 될 수 있으면 안 놓더만요. 그래도 다른 성바지들은 다 놨어요. 여기서 안 살고 타 지역에서 삼서  이 마을에 선산이 있는 사람들은 다 놨어요. 이 마을에 산 사람만 안 놓은 뿐이지.
(조사자 : 날개에 돌을 놓으면 못 날아가서 그런가요?)
그래서 시정도 두 군데잖아요. 옛날부터 시정(모정)이 두 개에요. 근게 저놈이 쓰러졌는디, 군수님이 왜 지어줬냐면 옛날부터 학 터기 때문에 시정자리가 눈이랍니다. 학 눈이 두 개 인디 하나가 쓰러져 버렸으니까.(마을을 위해) ‘지어주시믄 어쩌겄습니까’해서 지어준 거예요. 그래서 시정이 두 개에요. 옛날부터 두 개예요.
풍수지리 하신 양반들은 다 와서 학터라고 해요. 나쁜일은 없고 좋은 일은 많았죠.(소소하게 당한 것은 있죠. 그런데 크게 당한 건 없어요) 여기서 살지만은 이 마을 사람들은 타지에서 차 사고나 뭐하거나 다친 것은 아직까지는 없어요.
(조사자 : 마을사람들은 학 터라서 평안하게 사시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러죠. 저희들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여그가 옛날에는 한바다라고. 저그 산에다가 배맸다고 해서 배맨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땅을 파보면 뻘이 나와요. 그래서 바다라는 걸 우리가 알고 있죠.
여기는 물이 부족해서 기우제를 지내거나 그런 건 없어요. 어떻게 해서 든지 농사를 지었어요. 여기는 그리고 크게 물난리가 없었습니다. 여기는 살기 좋은 동네입니다. 홍수가 있긴 했으나 큰 피해가 있지는 않았어요.

창평 용운마을 유래
▲제보자= 나판주(남, 1968년생)
▲줄거리= 용운마을과 상소천, 꽃밭 등으로 이루어진 마을이 용수 2리이다. 꽃밭쟁이는 ‘매화낙지형’으로 왕비가 태어날 자리, 상소천은 바다길 같이 물이 흘러 하소천으로 이어진다.
땅이 자갈밭이라 서숙, 녹두 같은 밭작물만 하다가 저수지가 생겨 논농사가 가능해지자, 어르신들은 마을의 보화밥그릇이라 생각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우리 마을은 용운 마을이고, 용운마을은 세 군데가 있어요, 용운, 상소천, 꽃밭쟁이. 그리고 하소천은 유천리에요. 그렇게 구성되어 있고, 그리고 옛날 어르신들 말씀에 제가 정확하게 모릅니다마는 꽃밭쟁이란 데는 ‘매화낙지형’이라 해서 나중에 왕비가 태어날 자리라 그래요. 정확히 모릅니다마는 그 정도로 알고 있어요.
(조사자 : 왜 상소천이라고 했데요?)
제가 알기로는 옛날에 천이 거가 있었다 했지요. 요 밑에 천. 바닷길 같이 천이 있었데요.
(조사자 : 천의 명칭은 없어요?)
근게 상소천, 하소천이겠죠. 천이 위 천 밑에 천. 큰 천이 있었는가 봐요 여기가 바닷길 같이, 여기가 그런 걸로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조사자 : 그 물길은 어디서 이렇게 연결 돼요?)
글쎄요. 옛날에 바다같이 그렇게 얘기하던데요. 옛날 어르신말씀이 바다를 이루어, 바다같이 얘기를 하드라구요.
(바다 같고 월봉산 저그, 말하자면 길마재 요 짝에는 배 꼬리가 있어요. 배를 멘다해서)
(조사자 : 그 쪽으로 자갈밭이었어요?)
똑같아요. 여그나 거그나 여기는 저수지를 막아서 농사지을 수 있는 터였고, 옛날에는 밭으로 밖에 이용할 수 없는 땅들이에요.
(조사자 : 자갈밭에서 농사는 어떤 거 지었데요?)
녹두, 녹두라던지, 밭으로 쓸 수 있는 거, 서숙 같은 거, 그런 걸로 해서 먹고, 사는거 해결 했는데요. 근게 아주 어려운 마을이었어요. 마을어르신 말씀이 마을은 보화 밥그릇이라고 그래요. 그 저수지 보고 귀하게 앞으로 후손들이 가장 크게 고마움을 알고, 크게 생각하고 살아라, 이 뜻으로 말씀하시더라구요. 저는 인자 마을 관리를 하면서 거기다 신경을 많이 씁니다.

창평 하소천 마을 유래
▲제보자= 이홍종(남, 1966년생)
▲줄거리= 유촌2리 하소천은 조선 선조 때 깨끗한 모래 강을 메꾸어서 강화 최씨가 터를 잡은 마을로 오강리 창평리 삼천리 유촌1구 상소천 등의 마을로 빙 둘러쌓인 중심에 위치하여 산이 없는 마을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제가 알기로는 조선시대 선조 때, 이 마을이 생겼다고 알고 있어요. 그 당시에는 여기가 강이었는데, 메꾸어 가지고 터를 잡았다고 하네요. 그 당시에는 하소천이라 했어요.
우리가 알기로는 조그마한 냇가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소자가 적을소(小)가 아니고, 흴소(素)하얗다 바탕소 아주 깨긋한 강이었나 봐요. 여기가 아래에 있는 깨끗한 강, 그랬다는 그거구요. 용수리 2구는 상소천, 위에 있는 깨끗한 냇가, 여기는 아래에 있는 깨끗한 냇가,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 때는 엄청 큰 마을이었죠. 여기가 씨족 마을이에요. 최씨들이 거의 다 살고 최씨 마을이에요. 여기가. 여기가 강화최씨 마을이고, 그러다 일부 고씨가 있고, 이씨가 있고 정씨가 있고, 몇 가구 그 당시는 엄청 컸죠. 마을이 그때로는 컸다고 해요. 호수로 따지면 백여 가구 됐을 거에요. 선조 때 강을 메워 가지고, 여기다 마을 터를 잡았다고.
(조사자 : 여기 물길은 월봉산에 쭉 내려 오나요?)
월봉산 쪽에 상소천 용수리 2구를 거쳐서, 내려오는 참이었나 봐요. 여기가 위쪽은 상소천이라 하고, 하소천이라 했나 봐요.
이 마을 중심으로 유촌리 1구, 여기는 유촌 마을이라 하고요. 방금 갔다 오신데.
그 다음에 요쪽에 밑에 쪽에 보면, 오강리 마을이 있고, 우리 윗동네 용수리 2구 저쪽ㅇ[ 가 1구 요쪽에 창평면 소재 창평리 그 위쪽에 삼천리.
우리 동네가 어떻게 보면 한 중심이에요.
(조사자 : 그러겄네요.)
우리 동네는 산이 없고, 다른 데는 산을 다 끼고 있거든요. 우리 마을 산이 없어.
강을 메워 가지고 마을을 형성했기 때문에.
(조사자 : 혹시 땅을 막 파다 보면, 모래가 막 나오기도 하고 그러겠네요)
우리 어렸을 때 보면은, 여가 완전 상당히 넓은 냇가였어요. 여기서 수영도 하고 놀았거든요. 근데 모래가 그렇게 깨끗하고 돌도 많했고, 근디 지금은 농지정리 다 해가지고 논을 만들어 부니까
(조사자 : 그래도 뭔가 흐르는 물길은 있을 거 아니에요?)
물길이 이리 쭉~ 예. 이리 쭉 내려오고 있어요. 상소천에서 이리 내려오는 물, 그 하천이 그대로 살아 있어요.
(조사자 : 혹시 이 동네에서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나요. 그냥 하소천인가요?)
아래소내요. 유천리 2구 이렇게 안 부르고 하소천이라 안 부르고, 아래소내 누구, 웃소내 누구 이렇게 부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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