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42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42
  • 담양군민신문
  • 승인 2021.06.2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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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면 동산리 앞 금산

 

무정면 원동산 당산제
▲제보자= 강길성(남, 1929년생)
▲줄거리= 마을 생성과 함께 심어진 할아버지 할머니 당산나무에서 오방신과 더불어 객신과 마을신에게 일곱상을 차려 당산제를 지낸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당산나무가 당초에 마을이고 설립허고(형성하고)심었다고 이렇게 봅니다. 당산나무가 수령이 400여년 된다고 봐야죠. 그래서 음력으로 정월 열나흘 저녁이면 당산제를 모십니다.
옛날에는 인구전이라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1인당 얼매씩을 걷습니다. 그러고 조금 있는 집, 부잣집에서는 인구전 외에 쌀을 한 되씩 걷와요. 그래가지고 술을 빚습니다. 그러면 술을 빚으면 옛날에는 당산제를 모시는 화주가 있었어요. 화주 지명을 합니다. 해마다 그 양반이 수고를 허게 된 디 그 집이서 술을 해놓고는 부부간에 그 술독가지를 품고 잠을 잔다고 말이 있어요. 실제로 그렇게 했는가 안 했는가 내 눈으로 안 봤은게 모른디…
그 술로 당산제를 잡수고… 동방청재신, 남방적재신, 서방백재신, 북방흑재신, 중앙황재신 그래서 오방에 안 들었습니까? 오방신장하고 객신하고 또 마을 귀신이 있어요. 그래서 일곱 시루를 옛날에는 따로따로 해서 떡을 시루마다 앞앞이 그렇게 일곱 시루를 놓았답니다. 놓고 묘사를 잡수고 홀개를 불러서 (요새는 사회를 본다)순서대로 불러서 뭣 허라 뭣 허라 해갖고 (사회 순서대로 제를 지낸다.)
그러면 옛날에는 초경을 알리고 그다음 이경 알리고 그러면 2경 어르면 9시경 열시경 초경은 9시안에 어르고 3경을 어르면 12시가 되야요. 3경 어른 뒤에 당산제를 잡수게 됩니다. 당산제 잡수게 된 뒤에 마을 귀명개를 울려가지고 굿을 친다고 봐야죠.
굿을 치고 고리 내려갑니다. 당산나무가 두 간데가 있거든요. 요 위에가 있는 양반이 할아버지. 아래가 있는 양반이 할머니인디, 할아버지한테서 할머니한테로 모시고 갑니다. 그래가지고 당산제를 잡수고…그러면 마을 사람들도 그때 보름 각자 집이서 찰밥도 찌고 오곡밥을 합니다.
그래 가지고 각자 선영 대접도 하고 그렇게 해서 보름을 넘깁니다. 요새는 (당산제 지내는 시간이)빨라졌습니다.

돌이 많은 무정면 동산마을
▲제보자= 강길성(남, 1929년생)
▲줄거리= 마을의 이름이 돌이 많아 동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당초에는 마을을 설립할 때에(터를 잡을 때에) 임진왜란 때에 진주강씨하고 전주최씨가 밤나무골이라는 데에서 피난을 하면서, 저녁에는 피난하고 낮에는 서당골이라고, 서당골이 있엉. 거기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거시기를 해가지고, 거 정유왜란이 상당히 극심 했었는가 봅니다. 그래가지고 평정이 되니까 요리 내려와서 여그다가 마을을 설립을 하면서(터를 잡으면서) 거 원동산 가 돌이 많아갖고 원동산이라고 헌 것 같아요.
(조사자 : 돌이 많아서요?)
예, 돌밭이여 맨 돌밭이여 동산리는…
옛날에는 그 해방 후로 호가 400 정도 되었어요. 그랬는데 지금은 호수한 65호에서 70호였였는데, 지금은 한 45호 되가지고, 7, 80명 밖에 안된거 같습니다.


무정면 원동산 삿갓 이야기
▲제보자= 강길성(남, 1929년생)
▲줄거리= 마을에서 집집마다 대나무 삿갓을 만들어 죽물시장에도 팔고 경상도 김천으로도 팔았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아, 옛날에는 삿갓이란 것을 많이 했지요. 농사를 주업으로 허고, 부업으로는 거 삿갓을 이러했는데(만들었는데) 지금은 죽물시세가 없으니까 그런 거 전부 재패불고 안 해요.
아 그때는 가가호호 다 했다고 봐요. 어느 집 안 한집 없이 다 했어요. 담양시장에 나가면 죽물시장이 있었거든요. 죽물시장에 갖다 인자경상도 김천으로 많이 나갔다 합디다.
대가 부족하니까 다른 대나무밭에 가서 사와요. 대를 사다가 기러기를 (길이를) 한 2메타. 1매타 50, 그 정도로 짤라요. 거 짤라가지고 인자 짜갭니다(자릅니다) 짜개가지고 그걸 입으로 물고 대칼로 해서 얇게 얇게 이룹니다. 인자 고 놈을 짧게 짜갠 것을, 그래가지고 고놈 그 인자 피금, 껍딱은 껍딱대로 피금이라고 합니다. 또 속대는 속대로 히가지고 어 인자 그래가지고 부인들이 삿갓을 만들어요.
글믄 인자 세 개를 누르고, 세 개를 뜨고, 고 놈을 일정하게 계속 세 개 뜨고, 세 개 든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한 단 세 개 뜨고, 세 개 눌렀으믄, 그 다음은 다음 치 하나를 세 개로 누리고, 세 개를 또 씨고(씌우고)그러믄 여그가 바까지죠. 무늬가 생겨요. 그것이 첫 모양 세 개를 떴는데 또 세 개를 눌렀단 말이요. 그 다음에는 하나를 더 자쳐놓고(눕혀놓고) 다음에 치를 하고 또 다음에는 하나를 자쳐 놓고 또 다음에를 허고 이것이 이러니까 그러믄 다시 반복해서 또 돌아오고, 돌아오고 허니까 그 무늬가 생긴 삿갓이라고. 골로(그걸로) 삿갓을 해가지고 만들어서 미사리라고 저머리에다가 맞거께(맞게끔) 고걸 만들어서 거다 또 있어서, 인자 꼭지가 접으니까 이렇게 삿갓이라 머라 안 됩니가.
거기다가 망도 쓰므는(쓰며는)왔다 갔다 하니까 거 움직이질 못허게 미사리를 답니다. 그래가지고 거 여그서는 그러케 해서 우산이 없으니까 옛날에는 골로 많이 쓰고 다니고…
마을에 듣던 바로 헌다면 그 김천은, 경상도 김천으로 많이 간대. 삿갓이 한 점이서 보통 저 오일장이거든요. 오일장마다 하루 한 40매 내지 50매 다 나가는데 50매는 나간답니다. 한 집이서 그러믄 그 숫자가 상당히 많해요. 그러니까 김천으로 묶어서… 우리가 만들어도 어디서 소비를 헌고 하는데 경상도 김천을 가 보믄 거기 사람들은 농사짓는데 인부들을 놉이라고 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한테 한 점 썩을 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소비를 많이 했어요.

무정면 비봉산 24혈 이야기
▲제보자= 강길성(남, 1929년생)
▲줄거리= 비봉산 산하에 고비산과 장군대좌 등 24혈이 있는데 좋은 자리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비봉산 중에 고비산이 있는데 바로 고비산 밑에 가서 무정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옛날 지리학자들 얘기를 들으며는 비봉산하에 24혈이 있다 그래요. 24혈이 있다고 한디, 옛날 학교터도 혈이라고 봐야 되죠.
옛날에는 무정면을 치안했던 주재소, 시방으로 말하자면 파출소가 수문동 앞에가 있었습니다. 거기도 대혈이라 보고, 물론 면사무소도 혈 터라고 봐야죠. 오룡 내당 다 마을이 있는 데는 혈이 있다 봐야지랑.
옛날 정규식 초대국회의원을 했어요. 그 양반이  50석군, 당시 선거해서 당선 되어 가지고 담양군 초대 국회의원을 지냈는데, 그 양반 당시 초대국회의원 하다가 6·25가 났거든요. 그 양반 산소가 저가 있습니다. 거기를 장군대좌라 합니다. 그래서 거기를 수호하기 위해서 수문장이 있다 그거여. 수문장이 수문동에서 지키는 장소가 수문이여.
그러고 동산리 바로 앞에 부정띠기(가마부 솥정)가 있어요. 가마솥을 걸고 군사들의 밥을 해주는 부정띠기라고 있어요. 밥을 해준 거시가 있어.
또 마족이 있어요. 말바우 거리라고(마죽거리) 장군대좌가 있으니까 장군이 말을 얻어야 되거든요.
구시바우가 있어요. 무면하고 정면하고 경계선인데 안평리하고 동산리하고 경계선입니다. 거기 가서 구시바위라고 있죠. 옛날에 귀신바위라고 했는데, 거기가 도둑바위가 있었고, 귀산바위가 있고, 구시바위가 있고, 바위가 셋이여. 도둑바위는 도로 밑으로 들어가 버렸고, 귀신바위는 안평리 농사짓는 양반이 두둘어 깨서 없어져 버렸고, 시방 구시바위만 하나 남았습니다.
근데 장군대좌를 쓰면 구시가 뒤집어 진다고 말은 그런디, 우리가 보기에는 뒤집어지지는 안한 갑습디다.
금성면에 봉황리가 있지 않습니까. 촌명으로 가마실이라고 하는데 거기를 봉황리라고 하거든요. 그러고 저쪽에 가면 비내동이 있어요. 날비(飛)올래(來)자여서 비내동(봉황이)날아온다 그말이여. 비봉산 등허리에 가서 제일 상봉을 보고 고비산이라고 했죠. 높이 떴다 높을고(高)자에다가 날비(飛)고비산이라고…그래서 시방 여기서 보면 제일 높은 봉우리 아래 있어요.
비봉산 유래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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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립니다.
지난 5월10일자<494호> 5면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대덕면 저심마을 한지공장 이야기’ 내용 중 “예를 들면 대전면 갑향리는 향·부곡·소에 해당된다는 기록이 전하는데”라는 내용은 제보자가 제대로 알지 못한 개인적 생각이 기술된 내용이며 역사적 사실과 전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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