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43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43
  • 자료제공=담양문화원
  • 승인 2021.06.2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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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면 덕곡마을과 갈용재

 

무정면 덕곡마을 유래
▲제보자= 김연호(남, 1932년생)
▲줄거리= 덕곡마을은 조선시대 무오사화때부터 11대손이 내려오는 김씨, 강씨, 소씨들로 마을이 형성되어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그전 어른들 대충 듣던 말에 의하면은 여가 시방 마을 터가 연대 수는 언젠가는 몰라도 강고지라고 강가가 살고 소씨가 살고 그래가지고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연대수로는 얼매나 됐는지 모린 디, 우리 시조가 그전에 이조때게 요리 무오사환가 그 때 게 서울서 있다가 요리 내려 왔는갑디다.
함평 앵초산이라고 고리 내려와 가지고 거기서 말하자면 몇 대냐 십 구대, 나로 해서는 여가 거시기 선조가 11대거든요. 나로 해서는 11댄 디 인자, 그래가지고 조부가 광주 가서 말하자면 장열사 있지요? 장열사 거가, 시방 광주 두암동이여 김유신 장군 그 성이여. 김해 김씨
여그가 시방 말한바와 같이 소씨가 살고 강씨가 살고, 기왓장도 발굴되고, 근디 인자 위치가 봐서는 우편 쪽에 거가 소씨가 살고, 또 저그 시방 삼두라고 그가서 강씨가 살고, 그래서 시방 마을이 조성이 되았답디다. 고렇게 조성이 되야갖고 쭉…

덕석바위와 시암바위
▲제보자= 김연호(남, 1932년생)
▲줄거리= 덕곡마을 화봉산에는 에전에 장군발자국이 있는 덕석바위가 있었는데 지금도 장군비석돌이 남아있으며, 서암산에는 큰 배가 다니는 뱃고리가 있었다는 시암바위가 있는데, 지금도 그 바위 밑으로 골짝물이 흘러서 무당이 공을 드리러 다닌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덕석바우가 방금 뱃고리 있는 갈용재 가는 길에…그러고 요 우게 가면은 그전에는 시방 채석장 있기 전에는 고리 넘어가는데 큰 바우가 있었는디 발태죽이 꼭 용헌 사람 발태죽이 있어가지고 장군 발태죽이라고 있었어. 고것도 채석장 생김서 없어져 부렀제. 모두 발파시키고 없어. 지금도요 뒤에는 장군 비석돌이라고 꼭 한 이미터 높이의 말하자면 거시기가 있어요. 장군비석돌바우가 있고…
(조사자 : 그 바우가 무슨 산에 있어요?)
화봉산, 여기는 산정산이고, 또 여 우게가 바로 화봉산, 또 서암산이고, 또 저 그가 큰골이라고. 그럽디다만은…서암산 바우가 넓적한 놈이 지금도 바우가 있어요. 어른들 말 들어보면 그가 저 여가 그전에 큰 배가 다니는 뱃고리가 있다고 그전에 그런 전설이 있습니다.
(이지백 : 긍게 먼 바운가? 어디? 성암바우, 샴안바우라던가, 서암산 서암바우 몰라 울 동네서는 샴안바우 그렇게)
거시기 고 밑으로 골짝물이 흘렀어. 지금도 골짝물이 나와 가지고 어떤 여인이 공들이고, 무당이 공들이고 한다고 그럽디다.

갓잔등과 갈용재 이야기
▲제보자= 김연호(남, 1932년생)
▲줄거리= 옛날 농토가 부족한 덕곡마을에서는 야산 줄기 갓잔등에 다랭이논을 만들어 짓고 갈용제 고개를 넘어서 무정초등학교로 공부를 하고 다녔는데, 채석장이 생겨 길이 막혔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빈속골 지나서 거쪽 산줄기 쪼께 넘어서 야산 줄기 능선 보고 갓잔등이라고 합디다. 모다 그전에는 농토가 부족한게 인간들은 산 거시기까지 전담을 만들어가지고 농사를 짓고 그랬어요. 물 있는 데는 모도 심고 전답을 벌어먹고 했었는디 지금은 모다…
(조사자 : 그러면 다랭이논처럼 그래요?)
예 다랭이논. 그러제. 여기 넘어가면 서흥리라고 있어요. 독골. 무정초등학교, 초등하교 다닐 때도 그 서흥리라고, 서흥리가 독골이에요. 지금은 독골이라고 했는디 근래와서 서흥리라고 하제. 무정면 산골짜긴디 거시기 생기기 전에 요리 넘어 다니고 그랬어요. 갈용제로 해서 넘어다니고 했어요.
지금은 도로가 있어가지고 도로로 다닌디, 그전에는 전부 요리 가직 헌게 마을 뒷산으로 해가지고 고리 뭐시냐 그 옆에가 뭐시냐 전답이 있어가지고 그 우게까정 갈용제 우게까지 전답 있어 가지고 모도 심고 그랬소.
지금은 채석장이 생겨가지고 그 뒤부터는 여가 길이 댕기질 못 해뿔제.
채석장을 33년간인가 하다가 마을에서 피해가 많은게 지금은 못 허게 만들어가지고 지금은 태양광발전소가 있어요.
돌 발굴하면서 발파 안하요? 그러면은 방장이 쿵쿵 울리고, 그 비가 오면 거 인자 돌가리물 고것이 전부 흘러가지고 내려오고, 또…농산물 피해가 많제.

무정면 자동마을 유래
▲제보자= 최홍열(남, 1930년생)
▲줄거리= 자동마을의 원래 이름은 족자동이었으나 아들을 많이 나는 동네라 자동마을이라 부른다. 아들을 못낳은 강씨 집안에서 이사 와서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야기= 여기가 담양군 무정면 족자동입니다. 여가.
(조사자 : 자동마을로 이름을 개칭하고 아들이 없었던 김씨 분이 이쪽마을로 이사를 와서 아들을 낳았대요?)
강씨.
(조사자 : 그래서 자동마을이라고 했다구요?)
족자동의 자는 아들자자여. 여기는 대체로 손이 참 많아요. 제대로 나면 5형제, 6형제여. 이장님도 8형제여.
(박동식 : 8남매제. 그때는 인자 생긴 대로 낳기도 했지만, 아버님, 어머님 생각이 아들만 쭉 낳다가 기연히 딸을 낳을란다 해서 8남매가 되었어요.)
(조사자 : 이 동네가 아들이 많은 편이여요?)
(조사자 ; 그래서 자동인가?)
예. 원인이 거가 있어. 근디 아까 거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겄지만 김씨가 아니고 강씨요. 무정면 동산리 3구에서 아들이 없은 게 요리 결혼을 했어. 근디 동산리댁이라고 그려. 동산리서는 자동댁이라고 하고. 친정 따라 왔어. 재희를 마흔 몇 살에 낳았어. 그때는 조혼 할 땐디. 종훈이 아부지가 열 두 살에 장가를 갔당께.
(박동식 : 그래서 빨가벗고 깐밥 줘 그랬다믄서요.)

무정면 정석마을 유래와 문바위 전설
▲제보자= 여원숙(남, 1928년생)
▲줄거리= 정석마을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석마을 이전의 명칭인 환대리와 당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여기가 환대리입니다
여기 마을터 기운이 바깥으로 나가야 크게 되야 가지고 돌아온다 그런 지형이라 해갖고 돌아올 환자, 큰 대자 해가지고 환대리여.
(여철주 : 환대리여?한다리가 아니고?)
환대리제.
(조사자 : 근데 왜 정석마을로 이름을 바꿨어요?)
고것이야 인자 행정구역 변경 때문에… 그러고 이 큰 마을 안 있소.
(여철주 : 그것은 당고개)
(여인영 : 당현이요, 당현 집 당(當), 고개 현(峴)합해져서 정석리가 됐어.
(조사자 : 정석리라 한 게 바위가 두 개씩 마치 문처럼 서 있다고 정석리라 했다던대요?)
(여철주 : 네 군데야.)
네 군데가 있었는데 다 어긋나불고…
(여철주 : 아니, 있어요.)
저 뒤에는 있고, 지금도요렇게 선 노무 것이 아니라 요렇게…
(여철주 : 딱 앞에 지켜 서 있는 것이여. 그럼 옛날에 소도둑들이 와갖고 바위 안에를 못 넘어가. 여기 한다리(환대리) 말고 아까 저 마을회관 앞에 바위가 두 개 딱 지키고 서문에도 지키고 있고, 북문에도 지키고 있어요.
그러믄은 소도둑놈들이 유곽 넘어가다 못 넘어가고, 유곽 넘어가다 결국은 잽혀. 옛날 다 잽혔어요. 그래갖고 우리 마을이 그때는 당고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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