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44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44
  • 자료제공=담양문화원
  • 승인 2021.07.0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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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면 강정자마을 칡넝쿨 줄다리기

 

무정면 강정자마을 칡넝쿨 줄다리기의 유래
▲제보자= 여응철(남, 1957년생)
▲줄거리= 백중에 주인네들이 고생한 머슴들을 실컷 먹이고 놀게 해주었는데, 이삼일 즐기고 놀다가 심심하니 산에 흔한 칡덩굴을 가져다 새끼를 꼬아서 주민들이랑 줄다리기 하고 놀고 하던 것이 동강리 줄다리기의 유래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그때게는 일하시는 분들이 농촌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모를 심으며는 지금맹키 막 기계로 날리고 제초제로라도 뭐하는 것이 아니라, 비료도 없고 그러기 때문에 뭐하니까 이 구정물만 이뤄도 나락이 활착이 된다고 했어.
구정물만 이뤄도…
그래가지고 일꾼들이 호미로 뽁뽁 기면서 그걸 저그 저 고랑을 긁꼬 다녔어요. 그럼 풀도 없어지고, 거 땅이 이렇게 움직여서 거기서 거…제가 지금 생각하니까 양분이 뿌리가 거리 들어가지 않고, 그 유기질이나 이런걸 활착을 시켜준 거 같애
그래가지고 그것이 끝나자 백중 무렵이 되며는 “농사를 다 지었다. 인자 벼 베기만 하면 된다.”에 그래가지고 백중날이믄 저희 마을은 특히 일꾼을 모시고(부리고) 사는 사람들은 용돈과 옷 한 벌 해주고 이자 그랬어요.
그러믄 그 분들이 제가 사오십년 전에 보므는 한 열댓 분 됐어요. 우리 마을에 일꾼들이 한 집에 둘인 분도 있고 그래가지고, 그 분들이 인자(남의 집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오고 갈 때가 없잖아요. 지금 막 오라하고 갈때가 없어. 긍께 우리 마을에 정자나무에 모여서 인자 옷 해준 놈(사준 옷)입고, 준 놈(품삯) 넣어가꼬, 그 일꾼을 고용을 시켰던 주인네들이 요집에서 “자 내가 오늘은 닭 두 마리 해가꼬 죽을 써가꼬 갈란다.” 글믄 “내가 저녁에는 저그 저 찰밥을 해가꼬 가따 줄란다.”고 미리서 이야기가 돼야. 그러고는 “ 내가 막걸리를 한 섬 해가지고 그날 댈란다.” 해가지고 한집에서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가지고 정자나무로 다모여요.
글믄 인자 그걸 먹고 즐기고 허다가 헐 놀이가 없어. 더 헐 놀이가 없으니까 “야 우리 산으로 가자. 칡을 따다 꽈 가지고 이걸로 놀이를 하자.” 해가지고 칡을 가지고 꼬는 거지. 칡을 꼴 때기는 어려워요. 잘못 꼬믄…
굉장히 예쁘게 꽈지잖아요? 한빠트가 뺑뺑 돔서 탁 까고 딱, 딱, 딱, 말하자믄 기계로 새끼 꽜던 그런 디자인이 나옵니다 참 예뻐요 거 까노믄…
그래 가지고 그걸로 인자 해름에는 술들을 한 잔씩 먹고 동네 사람들하고 같이 줄다리기 하고 막 그랬었진요. 그래서 지금 칡넝쿨 유래가 거기서 나온 겁니다.
그 마을 주민과 그 일꾼 사이에 하신 분들하고 화합해서, 그날 하루를 그래서 일꾼 분들 생일이라고 했지요.
동짓날은 마감 날이고 인자 다른데로 가그라 하고, 백중날은 일꾼 분들 지금으로 말하자믄 근로자의 날, 저기 저 우리 마을에 그 머시냐 잉 그래가꼬 이삼일 놀았어요. 이삼일. 하루만 논 것이 아니라 한 이삼일은 먹고 놀고 아조 재밌게 지냈어요.

무정면 동산리3구 들독들기 놀이
▲제보자= 여응철(남, 1957년생)
▲줄거리= 동강마을에서 백중제때 일꾼을 뽑기 위한 테스트로 행해지던 들독들기 놀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 들독이라는 것은 옛날에 일꾼을 맞아들일라믄 지금은 내 회사의 종업원과 똑같아요.일꾼을 맞아들일라면은 이 사람은 힘도 얼마나 있고, 내가 일을 몇 섬을 줘야 할지, 그때는 나락으로 임금을 줬거든요. 두 가마니가 한 섬이여. 그것은 보통이여. 열 섬 짜리가 있고, 일곱 섬 짜리가 있고, 열다섯 섬 짜리가 있어. 그러므는 이 사람을 일 년에 봉급으로 준 것이 아니라 일 년에 몇 섬 주는 것을 정헐라며는 심을 쓰는 것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생긴 들독이여.일꾼 보수를 정하기 위해서.
(조사자 : 이 시기가 언제인가요?)
백중에, 그 돌을 지금도 마을에서 보관하고 있어.

동서남북중 고인돌의 행방
▲제보자= 송쌍근(남, 1957년생)
▲줄거리= 동서남북과 중앙에 있던 동고지 마을 고인돌에서 돌칼과 화살촉이 나왔었는데, 하천제방사업과 집을 지으면서 없어져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우리 마을 고인돌에 대해서 말씀 드릴께요. 고인돌은 우리 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다 있었는데 현재는 동쪽에 있는 것은 하천제방사업으로 편입 되 가지고 없어지고, 또 서쪽에 있는 것은 마을 안에가 있었는데 그 마을 집터 안에가 있어가지고 집 지면서 그게 지금 현재는 눈에는 안 보이게 없어졌어요.
현재 고인돌은 두기가 남아있습니다. 남쪽에치. 북쪽에치, 또 마을에 중앙에 있는 바위하고 두 기가 시방 남아있습니다.
마을 입구를 정리하면서 재단으로 쓰는 그 돌을 움직였을 때, 거기에서 돌칼 한 점하고 돌화살촉이 정확하게 개수는 모르겄는디 몇 개 좀 나왔어요. 나와 가지고 그런 것을 개인소장 하면 안 된다 해가지고 바로 문화원에 연락을 해가지고 문화원에다가 기증을 했어요.
거 누가 사진 찍은 놈도 있을 꺼인데, 돌칼이 한도막이 나부렀어. 도막이 나부렀다고 손잡이 바로 윗부분이, 우리가 삽으로 다 팠는데 그 돌을 옮길 때, 지금 그 돌이 입구 도로로 옮겨 들어가부써. 바닥으로 높으니까 땅을 파서 넣다고 그 어마마하게 큰 돌을…. 그것이 묘지석 앞에가 재단석으로 있는 거, 그게 없어졌어요. 지금은 도로에 들어가 있어요.

무정면 동고지마을의 지명유래
▲제보자= 송쌍근(남, 1957년생)
▲줄거리= 동고지리는 동쪽에 높은 곳이라는 데서 유래가 되었고, 바람이 잘 통하는 풀무골, 밭이 많았던 밭동고지, 소를 많이 키우고 있는 구라실 등 동고지 마을의 여러 지명에 관한 유래이다.
▲이야기= 동고지리라는 유래는요, 동강리에 부속마을이었던 동강리 동쪽에 있는 높은 곳이라고 해서 동고지리라고 붙었답니다.
여그, 예 각 그쪽에 지명으로 보며는 상동고지 밭동고지, 풀무골 그 주면에 이런 지명이 있는데, 풀무골은 그 우리가 나무를 태울 때 필요한 풀무 있죠? 풀무를 인자 시골말로 불무라고 하는데 거그는 요가 있었어요.
요, 그릇을 만드는 요. 근께 아마 거기에 필요한 것이 풀무골인디 바람이 잘 통하는 골짜기에요. 거가 지금도 그릇 파편 같은 것이 조금 남아 있어요.
풀무골에 가며는 그래서 그 골짜기풀무골이라고 하는데 옛날에 옥토로 많이 벌어먹었는데 요즘은 사는 사람들이 적어가지고 그 농사를 안 짓는 지역, 묵에븐(묵혀버린)골짜기구만요.
밭동고지는 양지쪽에 있는 그 산능성이를 전부 개간을 해 가지고 마을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이 전부 다 아무튼 거의 다 그 한 대지기 정도 했을  정도로 밭이 많이 있어요. 남향으로 있는데 나지막한 산을 전부 계단식으로 해 가지고 버는 골짜기를 밭동고지라 해요.
(조사자 : 밭동고지에서는 그러면 작물들은 어떤 작물들을 많이 해요?)
밭작물이니까 머 봄에는 보리 심고, 여름에는 인자 콩이나 깨를 심죠. 그 외에는 요즘에는 거의 다 고추를 많이 심죠. 고추. 아마 지금 가믄 90프로 정도가 고추밭 아닐까. 근께 거기도 밭동고지도 아마 삼분의 일은 작물 안 심고 시금(지금)다 묵하 있어요.
인구가 줄어들다 보니까 거기도 그 50호 가깝게 살다가 지금은 15호 정도 밖에 안 살아요. 15호 산데 그 중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은 한 일곱 여달 집밖에 안돼. 그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그 머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라던지 예술 허는 사람들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몇몇이 들오고, 또 소 키우는 사람들이…그 지명 중에 구라실이라고 있어요. 구라가 무슨 말이냐면 쟁기질 헐 때 아니면 소 구르마를 끄를 때 소 어깨에다 올리는 거 있잖아요? 목에다 올리는 것은 멍에라고 하고, 어깨다 올리는 것을 구라라고 하는데, 어떤 그 구라의 형탠지 어쩐지 모르겠는데 구라실이라는 골짜기가 축산인들이 지금 들와가지고 소가 지금 한 천 마리 정도 키우거든. 근께 인자 옛날 지명이 무실 못한다는 뜻이여. 소와 관련된 그런 그 부속구매지명을 땄는데 소가 많이 들어와 있다고.
바로 앞에는 그 명당혈이라고 혈, 혈을 쓸 때 무슨 혈, 무슨 혈 하잖아요. 근데 거기에 장군묘가 있고 또 소머리, 소머리 형이라고 시방 그 묘가 써져 이쓴ㄴ데 아 말머리, 말머리 형상이라 고 그 말머리혈이라고 있는데 그 골짝이 아까 구라실이여. 구라실이라고 우리 시골 할머니들 말로는 고라실이다고 해.고라실, 고라실이라고 하는데 거 시방 소가 지금 현재 천마리 정도 키우고 있어요. 다섯 농가가 아니, 여섯 농가가 소는 매일 나가고 들오고 하니까 정확히는 모른디, 지금 어림잡아서 천 마리 있다고 봐요. 주민들보다 몇 배가 더 많제. 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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