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49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49
  • 담양군민신문
  • 승인 2021.09.0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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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전설 1
▲제보자= 김관식(남, 1952년생)
▲줄거리= 전우치는 시목마을에서 태어나 서당을 다녔고, 장성해서 원율마을에서 청년기를 보내며 연동사에서 도술을 익혔다. 신출귀몰한 도술로 고향을 부촌으로 만들고자 황금술과 대들보를 중국에서 훔쳐와 원율리 강변과 담양댐에 빠트렸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전우치는 조선시대 실학자인 이덕무(1739~1793)란 사람이 쓴 책에 보며는 천장관전서란 책이 있어요. 거기 내용에 보며는 전우치가 바로 담양전씨, 여가 고향이었다. 설이 있고, 책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1. 이덕무의 『천장관전서』 중 「한죽당 필기」에 ‘전우치는 담양사람이다. 어릴 때 암자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다…’ 2. 『추성지』 고지산면(告知山面) 인물조: 전우치는 원율 사람이다. 기이한 도술을 부리므로 사람들이 이름하여 우객이라 하였으나자세한 사실은 알 수 없다.)
그 설을 잘 보니까 전설에 따라 짐작해 보며는 담양 덕성리 2구 저쪽으로 보며는 시목마을이다고 지금도 있어요. 그 시목이 홍시 시자에다가 나무 목자 감나무가 있는 곳이다 했는데 거기서 태여아나서 서당을 다니면서 가는 길에 감나무가 있는 바위에서 항상 놀고 감도 따 먹고 동네 사람들 쉼터가 된 것 같아요. (*금성면 일대가 원율이었던 점을 감안하고 금성면 일대 입향조를 살펴보면 시목마을에 5~600여년 전에 담양전씨가 입향조로 되어 있음. 그리고 담양전씨 전녹생이 자신의 땅이었던 지금의 향교터를 담양향교에 기증하고 충청도로 옮겨간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담양전씨는 옛 향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원율리 혹은 대성리 쪽에서도 고려 말부터 살았던 것으로 보임)
전우치가 그렇게 서당을 다녔는데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별히 전우치가 자란 배경을 보며는 자리기 전에도 전우치가 도술을 많이 부려가지고 도술 소설로써 홍길동전 암작이라고 합니다만, 홍길동이가 도술을 부린 것처럼 전우치도 못지않게 도술을 많이 부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모여가지고 도술 한번 보여주라 하니까 밥을 먹다가 밥태기를 그대로 뱉으니까 나비가 돼서 날라 가는 모습이 쭉 변화 되가는 모습이 보여져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깜짝 놀랠만한 도술을 보여줬다. 그런 그림이 우리 마을에 벽화로 그려져 있고, 또 이수광이 쓴 책에 보며는 그 내용 속에 여러 가지 내용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 보며는 귀신도 제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만큼 도술에 능허고 힘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벽화도 우리 마을 배경이 재밌는 전설과 함께 여러 가지 동서남북으로 전부 다 관련이 돼 있어요.
그것을 우리 전우치 마을로 만들어보자 그런 각도에서 지금 벽화를 몇 점 그려 놨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동네 사람 이야기와 문헌에 내용을 이야기해서 저희가 벽화를 그려놨는데 그 이야기를 대충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목마을에서 자라가지고 덕성리에 있는 서당을 다니다가 감나무가 있는 바위에서 항상 쉬어 가는데 예쁜 소녀가 와서 같이 앉아서 유혹을 하면서 입에다가 키스를 하기도 하는데 키스를 할 때마다 구슬을 집어넣다 뺏다 하면서 갔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렇게 몇 번을 했더니 서당 선생이 보고 스님이었는데 아, 이거 이상하다. 얼굴빛이 왜 안 좋으냐고 물어 봤더니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오는 길에 예쁜소녀가 자기한테 키스를 하면서 구슬을 넣다 뺏다하니까 벌써 스님은 알고 사람이 아니고 여우다 생각을 하고 앞으로 구슬을 자기 입에 넣어 주며는 그냥 삼켜버려라 주지 말고, 그렇게 시켰더니 그 결과 역시, 구슬 받지 못하고 힘을 잃어버리고 여우로 변신해서 도망가 버리고 전우치가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와서 서당을 쭉 다니고 성장 돼서 바로 원율리 2구 마을 오평마을에서 성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연동사로 도를 배우러 가는데 그 가는 데가 하천이 있는데 지금 동일레미콘 있는 그  장소가 옛날에는 다 천이었어요. 거기를 가는데 비가 많이 와서 범람해서 건너갈 수가 없는데 하룻밤에 전우치가 집채만한 바윗돌 아홉 개를 갔다가 집어 놔 가지고 대성리에서 연동사 가는 길을 만들었다 해서 일명 하룻밤 했다 해서 도깨비 바위다 해서 있는데 지금은 담양댐을 막는 장소, 둑이 되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연동사에서 도를 배우면서, 금성산에 산들이 지금도 봉우리들이 많은데 시루봉이라는 봉우리가 있는데 연동사에서 보며는 바로 보여. 삼각형, 여기 재밌는 전설에 보며는 전우치가 대나무잎사귀로 분신술을 쓰고 대나무를 꺽어 가지고 화살을 만들어서 과녁바위란 곳에다 화살을 쏴고 그랬다. 그래서 도술을 부려가지고 도술 연습한 곳이 연동사다.
연동사에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 것은 연동사에 스님들이 먹을라고 술을 담아놨대요. 어느 날 와서 보니까 어떤 사람이 와서 술을 훔쳐 먹으니까 잡고 보니까 바로 옛날에 그 여우였어요. 그 여우를 보고 지난날에 날 그렇게 피해 입히더니 또 여기 있구나 하고 잡아서 혼낼라 하니까 그 여우가 말하기를, 나를 놔 주시고 내 한번만 소원을 들어주믄 당신에게 좋은 선물을 주겠습니다. 해 가지고 그레 머냐고 물으니까 나를 지금 처벌하지 말고 내 목에다 줄을 달아 주며는 굴속에 들어가서 당신에게 필요한 좋은 책자 구슬책을 줄 테니까 그렇게 한번 해 봐라하니까 만약에 내가 거짓말 하며는 내 목에 줄을 바로 땡기며는 내가 잡힐 것 아니냐. 그래서 한번 믿어보고 했더니. 역시 도술책을 드려서. 지금도 연동사에 가면 굴이 있습ㄴ다.
그래서 도술책을 줬답니다. 그 책을 가지고 도술을 익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아침에 자기 집 고향에서 노비하나가 당신 아버지가 갑자기 죽었다는거여. 그래서 빨리 가자니까 책을 읽다가 책을 던져버리고 얼른 ㅤㅉㅗㅈ아갔더니 금방 있었던 그 노비가 안보였다는 것이여. 알고 보니 그 노비가 아까 말한 여우가 둔갑을 해 가지고 자기를 또 속여 버리니까 아하, 전우치가 또 둘렸구나 생각을 했는데 아까 자기가 굴에서 얻었던 그 책자를 절반도 안 읽었는데 읽은 부분까지만 놔두고 다 뜯어가 부렀다는거여. 그래서 항상 전우치가 도술을 부려도 백 프로는 못 허고 절반정도만 도술을 부려서 나중에 역사를 보며는 서경덕이라든지 황진이랑도 교류를 했는데 그 내용을 보며는 서경덕하고도 같은 도술을 부려갖고도 이기질 못했다 해서 33명인가요, 그 도술 가운데 한분이 전우치란 말도 있습니다.

금성면 오평마을 왕버들 전설
▲제보자= 윤송천(남, 1940년생)
▲줄거리= 오평마을 방죽에 물에 비취는 바위 때문에 나병환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왕버들 나무를 심어 그 곳을 가렸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야기= 왕버들 나무가 있는 곳은 우리가 뒤에 가서 들어보믄, 서쪽 석현리라는 동네 들어서서 뒷산이 있는데 바우여서 들벽이 있어요. 여기서 보며는 물빛이 비춰요. 바우에 물빛이 비친디 풍수지리학상으로 얘기를 하자믄 그런 것이 마을에가 비치며는 옛날 나병환자들이 발상한다. 그런 얘기가 있어가지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왕버들 나무를 옛날 어르신들이 심어논 것이, 내가 한 50살 먹었을 때게 350년 되았다고 했는디 지금은 나도 70살 넘어부렀은께 지금은 400년 가까이 되어있지 않느냐 그런 설이 있고…
도문화재 간판에 보며는 당초에 네그루가 있었다고 했는데 우리 어렸을때는 여러 구가 있었어요. 그것을 옛날에 쓰러진 나무를 갖다가 잘라서 옛날 노인들이 장구를 손으로 파갖고 장구통도 만들고 그랬어요. 우리 어려서. 그 뒤로 한 그루가 없어져 버리고…
장구를 그 전에는 버들나무로 만들었대요. 가벼우니까. 장구통을 옛날에 그걸로 만들었어. 많이. 그렇게 해서 우리가 쓰고 어렸을 때 그 장구를 말하자믄 치고, 동네서 어르신들이 명절이므는 정월 명절에, 보름이면 호호방문 하면서 건출도 하고 쌀 같은거 그런것도 하고 예가 있어요.
(조사자 : 왕버들 나무에서 제는 안 지냈나요?)
그런 것은 안 지냈고 우리 마을에는 당산나무도 잇고 오래된 왕버들 나무도 있었지마는 목신제라고 나무에다 제사지내는 그런 것은 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젊은 사람들은 살기는 신간이 편하지. 안 지내니까. 그러고 그 뒤에 네 그루가 살아 있었는데 다 그것이 고목 되아서 태풍으로 쓰러져 버리고 세 그루를 보존하고 있는데 그것 마저도 두 그루는 보수를해서 형체를 유지하고 있고, 또 그것마저도 쓰러질라 하니까 받침대로 받쳐놓고 한 그루만이 정상적으로 지금 살고 있어요.
(조사자 : 그 바위가 보여 가지고 동네에 안 좋은 일이 있었나요?)
그런 것이 없어. 옛날에 풍수지리학상으로 그것을 막아줘야 나병환자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 가지고 나무를 많이 심어서 숲을 만들었다. 그거를 가로막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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