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이야기
50.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이야기
  • 자료제공=담양문화원
  • 승인 2021.11.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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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 이야기
▲제보자= 조정숙(여, 1954년생)
▲줄거리= 금성산성은 그 안이 넓어 200호가 넘게 살았다 한다. 산성 안의 민가에서 농사를 지으러 산성 밖 주변의 하성리, 평신기, 원율리, 정각리, 대성리로 내려올 때에 지금은 수몰된 도깨비 다리를 이용했다고 한다. 금성산성 옆에 큰 바위가 보이면 인물이 안난다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어려서 학교에서 나무도 심고 불이 나지 않게 산불조심 표어도 쓰고 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금성산성은 우리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매년 소풍을 갔고, 그때 굉장히 험하다는 느낌, 아마 어린 눈으로 봤으니까. 지금 그 보국문, 그때는 남문이라고 그래서 그 남문성터가 제대로 남아 있어. 아주 큰 바위로 되어 있는 그 쪽에 소풍가서 그 터에서는 많이 놀고 그랬던 거 같애.
그리고 우리 아버지 전언에 의하면 금성산성 그 안이 굉장히 넓었다고 그래. 얼마나 넓었냐면 한 299호가 살았다는거. 무지무지하게 넓지. 200호가 살았으면. 그 쪽에서 인제 사람들이 많이 사니까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고 그래서 아랫마을로 농사를 지러 내려왔다는 거 그 중에 하성리라는 이름도 성 아래 내려와서 짓고 우리 동네 평신기 들이 넓으니까 이렇게 오고 옛날에 원율리 그 쪽도 내려가서 또 정각리, 대성리 그 쪽에 내려가서 많이 농사를 지었다고 그런 얘기를 아버지한테 듣고, 또 그쪽에 농사를 지러 내려온 것이 굉장히 농토가 넓었고 지금 담양호가 있던 자리가 도깨비다리라 해서 금성산성에 소풍가면 도깨비다리로 내려오고 그래서 도깨비다리도 인제 전설이 서울이 될려다가 말았다고, 그때는 원율현이라는 생각도 안하고, 나중에 생각하니까 바위가 걸어가다가 아주머니가 빨래를 하다가 바위가 걸어간다해 갖고멈춰버렸다는 그런 이야기를 다른데도 있는 거 같은데 거기에서 이렇게 있었다는 거.
그리고 후에 안 얘기지만 이연년이가 잠시 그 쪽을 다스렸다는 거. 원율현을. 아 그렇구나 그런 거를 느꼈고 그때만 해도 어리고 하니까 아마 동학전쟁이라든가 그런 얘기까지는 많이 못 듣고 그리고 빨치산들이 고쪽에 많이 아지트를 정하고 6·25때도 그 쪽으로 인제 우리가 말한 금성산성 뒷산, 뒷산인데 그리고 피난을 갔다고 하고 굉장히 그때만 해도 그 으스스하고 산이 깊고 그랬던 곳으로 되고, 한 대는 그 금성산성, 금성산에 불이 꽤 몇 년 동안에 많이 났어. 맨 겨울 되며는. 그런 것도 뭐라고 애길 듣긴 들었는데 불하고 연관이 있다고. 그런 것까지는 확실히 모르고 인제 그러다 보니까 지금 그 금성산성 옆에 우리 동네 쪽으로 보고 있는 산에 큰 바위가 있어. 엄청나게 큰 바위가 있는데 풍수지리적으로 별로 안 좋대. 우리 할아버지한테 들은 얘긴데 그 바위를 가리면 우리 금성리에서 4개 부락에서 큰 인물이 나온대. 그 바위를 보지 않으면 근다 해서 나무를 심자 어쩌자 해서 그 쪽에 가면 옛날에 불조심이라는 그런 엄청난 바위에 쓰기도 하고 그랬던 거 같은데 그 정도.
그리고 더 아는 분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별로 금성산성에 대해서 많이 알라고 하지 않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절에를 많이 가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아무튼, 읍성을 대신해서 그 금성산성에 거의 많이 숨고 또 그쪽으로 숨으며는 찾지를 못한다고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을 뿐

금성면 원율리 윷판바위
▲제보자= 김관식(남, 1952년생)
▲줄거리= 원율리 마을에서 뒷산에서 연동사 가는 길목에 넓적한 바위가 있는데 윷판바위라고 하며, 전우치가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야기= 우리 원율리 마을에서 뒷산을 쭉 타고 한 50분간 등산길을 가며는 금성산성 올라가는 과정에 등산길 우측에서 보며는 연동사를 넘어가는 등성이에 넓적한 바위가 있어요. 전설에 의하면 많은 장군들이 말을 타고 가다가 쉬어 갈 수 있는 그 바위에다가 바둑을 놓고 가라고 바둑판을 그려놨던 것이 지금도 있습니다.
지금은 상당히 희미하게 보이는데 바위에다가 전우치가 윷판을 만들어서 바둑이 아니라 윷판을 만들어서 바둑이 아니라 윷판, 지금도 한 20명에서 30명 정도는 ㅤㅇㅏㅈ아서 놀 수 있는 그런 공터가, 넓은 곳이 있는데 그 것도 전우치와 관련된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추측하건데 나무로 윷을 만들었을 것이고, 거그 사용된 것은 조그마한 돌, 자갈돌로써 말을 사용되지 않했나. 그 주변에 가보면 조그마한 돌들이 있어요. 참고로 추측해 본 것이고. 많은 사람들, 들려서 이야기가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 조그마한 돌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 걸로 말을 쓰고 판이 넓으니까 윷을 충분히 났지 않겄냐. 연동사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죽피방석 만든 이야기
▲제보자= 김영자(여, 1946년생)
▲줄거리= 죽피방석은 안쪽의 하얀빛 부분을 이용해 벼짚을 말아 송곳으로 쑤셔가며 방석을 만든다. 오합통은 5개의 합으로 이루어져 왕골을 이용해 만든다. 둘 다 시장으로 내다 팔았고 왕골은 조합으로 들어갔으며 외국의 수출품이기도 하다.
▲이야기= 죽피라는 것은, 죽피 말하자면 껍닥을 찢어가꼬…죽순 껍질로 그렇게 찢어가꼬 방석을 만들어서 시장에 가며는, 시장에 가서 팔아요.
짚이 있어야제. 짚이 안꼬 넣어가꼬. 요케 꼬쟁이로 꼭곡 쑤셔가고, 다 거시기가 있어. 허는 방식이 다 있죠. 그랴꼬 고놈 히서 시장에 가면 팔아서 고것으로 거시기를 하고 했는디…방석 한 것은 평야 망땡이 같이 이렇게 높이 요만치 요정도 되게 해가꼬 허며는 고놈을 다섯 개 들간 놈 , 오합해서 말하자면 왕골 껍닥으로 혀, 고것을 짚허고…
(조사자: 그러면 다시 죽순 껍질 이야기로 갈게요. 죽순 껍질은 언제거로 사용해요?)
가을에는 안 나오제. 봄에 나오는 거 주서(주어서)놨다가…
5월달에 나오제. 나오제 죽신 껍닥이 왕대치. 분죽 있고, 왕대 있고 그러거든요. 왕대 죽순으로 방이 방석 만들어요. 고것이 길고 좋은게  왕대 죽순은 요렇게 길거든. 요렇게 길어. 분죽은 요만밖에 안 혀. 하여가꼬(하얗고) 깨끗혀. 왕대도 깨끗하고 무늬도 꺼먹꺼먹허니 있는 놈도 있고, 뒤집어서 허면 헉해(하얗다)
요 우동에 가면 많이 방석해서 요석(와석)해서 판 사람들이 많제 근데 우리는 조금씩 히서(해서) 거시기 허고, 집에 그때는 고런 거 해서 먹고 살았제.
오합통 같은 것으로 조합으로 들어가고. 조합이 따로 있어요. 글면 조합으로 들어가고…담양서 사용을 해서 인자 수출을 힛제(했제) 시안에도(겨울에도)봄에도 허고, 여름에도 허고 하는 것은. 철이 없게 고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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