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천년 담양 설화
51. 천년 담양 설화
  • 자료제공=담양문화원
  • 승인 2021.11.3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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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면 연동사 전우치 동굴

 

금성면 연동사 유래
▲제보자= 조정숙(여, 1954년생)
▲줄거리= 금성리에 연동사는 고려 때 세워진 절로 산중에 있는 평신기, 부곡, 문암, 하성 네 개마을과 같이 함으로써 꽤나 큰 규모와 재력을 지닌 절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이연년 형제가 거점으로 삼고 난을 일으킨 곳으로,d lgn 몰락하여 마을에서 신도가 끊긴 것으로 여겨지며, 그 과정이 마치 바위가 걸어가다가 아낙이 보고 발설하자 멈춰버려.
담양이 도읍이 되지 못했다는 전설과 유사하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연동사는 내가 어렸을 때는 어디 다른 데로 속하는줄 알았는데 우리 금성면, 금성리에 속하는 절이라고 하고 동네서는 수군수군하는게 벼룩 때문에 망했다고. 절이 없어졌다고 그러면서 6·25때도 그 토굴로 피난을 가고 뒤에 금성산성 우리 금성리에 4개 마을이 있잖아요. 평신기, 문암리, 하성리, 가마실, 4개 마을이 있으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150명 갖고 다 못하니까 뒤에 금성산성, 그렇게 해서 피난을 갔다 그러고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연동사에서 무등산이 바로 보이는, 그래서 아조 괜찮고…
근데 묻혀버렸으니까 이제 할 말은 없는데 그 이연년 하고 연동사 하고 금성산성 담양호 밑에 바닥에 깔려있는 도깨비다리, 그 쪽에 먼가 연관이 되어있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그 원율현이였잖아 옛날에 원율현이었는데 도깨비 다리 거기에서 걸어가다가 아, 바위가 걸어간다 하고 아주머니가 말해 노니까 멈춰버렸다는 거. 그래서 추측인데 그 이연년 형제가 현으로써 그때 활동할 때, 하다가 나주가지 먹으려다가 김경손인가? 거기서 패해갖고 완전 현이 폐현되버렸잖아. 지금은 인제 리가 되버린 그런 속인데, 그때 연동사에서 꽤 활약했었지 않는냐 그런 저긴데 후대에 아마 우리 마을에서는 별로 불교신도가 없는 거 같애. 오랫동안 끊겨서…
그리고 인제 산이 좀 깊고 마을이 네 개 마을이 있다는 건 엄청 크거든, 그래서 내가 사는 평신기는 이제 평평하다 해서 평신기고 가마실(부곡)이 워낙 많다보니까 아마 그쪽도 좀, 이렇게 연관이 되질 않았는가 생각도 들고 농토도 이렇게 넓고 그러니까 한때는 연동사도 꽤 잘 살고, 부자고, 차나무도 심어져 있고…

금성면 원율마을 죽피자리 생산 이야기
▲제보자= 송금표(남, 1944년생)
▲줄거리= 원율 마을은 돌밭이라 농사로 먹고살기가 힘든 ‘녹두밭 웃몰’이라 불리는 마을로, 마을 뒤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순껍질로 자리를 만들어 살았다. 1960년대까지 마을대밭이 황금밭이라 햇는데 지금은 대밭이 모두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여기가 하천이라 물로 다쓸어. 내려가 분 게로 농사도. 지금은 다 개간을 해서, 전부 다 만들어서 농사도 지어 묵고 모두들 다 시방 그러지마는, 그 전에는 순 돌밭이여, 돌밭. 그랴꼬 댐 막은 지도 그렇게 뭐 오래된 댐이 아니거든, 이거 우리가 군대에서 제대 나와 가꼬 댐을 막았으니까. 그래가지고 전부 흙 들여 가지고 논도 만들고, 뭣 허고 해가지고 했는데…그 전에 대나무 껍딱으로, 그것을 통째로 길게 막 있는 놈은 잘게 쪼개. 쪼개가지고 고놈을 인자 골로 자리를 만들었어. 그래 가지고 우리나라 전국으로 다 고것이 팔려 나가제. 근디 그러면 그것가꼬 조금씩 벌어서 뭐 좀 사다 묵고, 뭐 허고 시중에서 그러고. 동네에서 모다 생활해 왓어. 긍게 이 근방서 말이 ‘원율이 녹두밭 웃물이다’ 그려 젤로 곤란한 마을이다. 그 말이여. 녹두밭 눈물이다. 녹두밭 웃머리다. 젤로 곤란허니 산 마을이 원율리다 그 말이여.
그 말이
그래 가지고 저기 하동서도, 죽피를 대나무 껍닥 많이 차로 막 실어다가, 시중에 팔면 거기서도 막 사다가 자리를 만들고, 자리 만들면 인자 뭐헌 사람들은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고것을 볏짚, 볏짚으로 만들었어. 대나무 껍닥을 감아가꼬 근디 볏짚 없는 사람은 볏짚 사야 되고, 대나무껍닥도 사야제. 그러한게 양쪽으로 돈이 들간 게 별 수확 큰 수익이 안 되고, 뽀도시 근근히 뭣이라도, 반찬이라도 조금씩 사다 먹을 정도 밖에는 주지를 안했어요. 그랴꼬 우리 마을 유래를 듣기는 듣었어도, 머리가 흐려가지고 잊어 불고, 뭣을 잘 몰라.
(조사자 : 예. 주로 어떤 종류 죽순 껍질 이용하셨어요?)
그거 분죽, 일직 나온 분죽도 쓰고, 늦게 나온 왕대도 썼어, 다 썼어
분죽은 짧아, 껍닥이. 왕대는 이렇게 길고, 그러면 왕대를 사며는 제품이 좀 많이 나오고, 분죽을 사면 제품이 조금 덜 나오고, ㅤㅉㅏㄻ으니까 감아서 만드니까, 분죽은 색깔이 노랗고 왕대는 까맣고…
그것은 만든 지가 한 75년 80년 그때까지 만들었다고 봐야제. 내가 70년도에 그 제품을 사가지고, 상인도 내가 해봤어. 대구도 가고 이리 군산 대전 할 것 없이, 내가 그것도 상인을 해가꼬. 긍게 내가 70년도에 했은게 그 뒤로는 상당히 했으니까 그렇게 80년대까지는 아마 했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조사자 : 직접 가지고 가셔서 파셨어요?)
응, 그렇지. 여기서 시중에서 많이 사가지고, 이렇게 둥치로 만들어 가지고 화물로 부쳐. 부쳐 가지고 가서, 거기서 찾아 가지고, 하숙집 정해 가지고, 갖다가 거기다 놓고 인자 돌아 댕기면서.
(조사자 : 마을 마다 돌아다니면서, 몇 개씩 가지고 다니면서 파셨어요?)
그것은 마을에서 잘 안 사. 길바닥 외에는 시내에서 택시 그냥 주로 차 모는데, 그런 데로 버스나 그런 데로 많이 사용을 했지.
(조사자 : 원율 마을 뒤쪽 산에 대나무 밭이 많았어요?)
아. 원율가 대남(굉장히) 많잇제. 근데 지금은 다 파 불고, 대나무가 필요 없으니까. 그 전에는 대나무를 빠개 가지고 바구니를 만들어 가지고 중국에 다 팔았다고. 근디 지금은 나일론 중국서 나일론 제품이 들어옴서부터서, 대나무가 죽어버리는 거여. 대나무는 무겁고 다시고 만들면 꺼끄럽고 그런디, 나일론 제품 반들반들 허니 좋은 것이 나오니까 물건을 안 사불제. 대나무 물건을. 긍게 점차적으로 히서 지금은 아주 그냥 완전히 소멸 되야 부렀어.
(조사자 : 대나무 심고 무슨 행사 안했어요?)
뭔 행사 대나무 심을 일이 없어. 안심어. 그리고 군에는 최형식 군수가 대나무 모다 거시기 해서 심제. 마을에서 누가 대나무 심글라고 맘 먹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조사자 : 그래도 1960년대, 이럴 때 생금밭이라 했다면서요.)
그때는 황금밭이라 했지. 황금밭. 아조 돈이 거기서는 돈이 엄청나게 대밭에서 나와. 년년이 죽신이 나면 그것이 다 돈이여. 그거 베어서 팔기 때문에 황금밭이라고 했어. 대나무 그때 또 비쌌어. 어쩌 살 사람이 많아 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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