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이야기
52.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이야기
  • 담양군민신문
  • 승인 2021.12.0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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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면 오평마을 회관 앞 담양 철로길
▲제보자= 윤송촌(남, 1940년생)
▲줄거리= 해방되고 얼마 후 까지는 기차가 담양까지 다녔는데 철도청에서 뜯어가 버렸다. 오평마을 회관 앞에는 남원가지 이어지는 철로길이 나 있었는데 철선도 깔아보지도 못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그 철도길이 광주에서 남원까지 나 있었는데 기차는 광주에서 담양까지는 다녔어요. 그러나 담양서 남원까지는 간 적이 없고 철선도 깔아 보지도 않고 그저 기차가 다닐 수 있는 길만 이렇게 확보로 되아 있었지. 교각다리도 놓지도 않고 굴 같은 거 이런 도로 같은 완전히 와 있었으나 다리판이 세워져 있으므는 깔아야 하는데 그걸 안 깔아 났어. 그런 그 철도길이 여가 있었어요. 회관 앞 바로 그리 지내는 길이 있었죠. 오평마을 회관 앞으로 해서 지내는…
(조사자 : 철도는 담양 어디까지 다녔어요?)
담양 현재 차부 앞에, 터미널 앞에 남쪽으로 약 몇 메타 안 떨어져서 있었어요. 거가지 기차가 다녔어. 나도 그 기차를 타 봤제. 나는 어려서 울 어머니가 등에다 업고 우리 외갓집이 광주기 때문에 친정에 가시는 길에 업고 다녀서 타봤다 그랬어.
일정시대 때 다 뜯어가 부렀제. 그것을.
(조사자 :  1945년 해방되고 할 때요?)
아니 그 후에. 몇 년간은 지속돼 있었제. 내가 45년생인 께 내가 타 봤으니까.
기차가 그렇게 다녔었어요. 담양까지. 남원으로 가는 철도를 놓을려다가 못 놓고 결과적으로 철도청에서 이걸 폐쇄시켜버리고 팔아 묵어 부렀제. 지금 다시 또 철선을 논다고 그러잖아요. 대구가지 연결하는 철선을 또 지금 논다고…
(조사자 : 그 기차가 몇 칸 정도 되었나요?)
그 기차는 몇 칸을 달고 다닌 것이 아니라 보통 대여섯 칸씩 달고 다녔잖아. 화물칸 있고, 사람 타고 다는 칸이 있고, 기차는 보통 대여섯 칸씩 달고 다녔잖아. 보통 지금도 그래.
석탄, 석탄 기관차. 우-빼- 함서 크락숀, 말하자믄 역전 당도 할라므는 그 안내신호로 빼-함서 소리 질르고 그랬잖아요. 옛날에 증기 기관차. 팽야 석탄이 증기 기관차잖아.
담양역이지. 역이 중간 중간 있었어. 5·18묘역 조금 지나가 갖고 거가 역전이 있었어.
망월동 옆에가 역전이 있었어.

진두섬 이야기
▲제보자= 윤송촌(남, 1940년생)
▲줄거리= 오평마을에는 진두섬이 있는데, 진도 섬인줄 알고 서울서 옛날에 귀향을 보낼 때 진도로 보낸다는 것이 오평마을로 잘 못 와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야기= 진두섬이라고 들었는데 오래지내다 보니까 진주섬인가 진두섬인가를 헷갈려가지고 군에서 유래조사를 하러 다닐 때게 내가 진주섬으로 얘기를 한 것 같은데 그 뒤에, 학자들한테 알아보니까 진두섬이 맞다. 그런 얘기를 해요. 그것이 우리가 알기에는 제대로 말하자믄 부르는 이름이었는데 그것을 착각을 하고 진도섬으로 알고 서울서 옛날에 귀향을 보낼 때게 진도로 보낸다는 것이 요리 와 부러갖고 와보니까 그것이 아니여서 다시 되돌아갔다. 그런 얘기도 옛날 어른들이 한 적을 들은 기억이 있어요. 진두섬이 맞는 걸로 알고 있어요.
옛날에는 빨래터도 하고, 김장때 김장배추도 다 씻고 우리들이 목욕도 하고, 옛날 스케이트란 것이 있었어. 나무로 만들어서 애들이 찍고 다닌거. 그 얼음이 크게 얼므는 우리가 거기서 스케이트 타고 놀고 겨울에는 그렇게 재미있게 놀고 그랬어. 물도 엄청 맑았어. 거 바우 밑에가 굴이 있었는데 우리 어렸을 때는 그랬어. 거기서 불을 때믄 저 사람, 소재지에서 연기가 날 정도라고 그런 굴이 뚫린 거라고 그런 소리도 있었는데 그건 거짓말인거 같애. 지금 생각하믄.
옛날에는 용면서 내려온 물줄기가 거그를 치고 돌아 가가지고 바우로 되아 있기 때문에 거기를 치니까 저 안으로 구멍이 뚫어져서 굴이 생겼는데 지금은 모든 천상이 제대로 정비가 되다 보니까 하천 같은 것도 정비가 되다 보니까 물줄기를 제대로 잡어서 저짝으로 돌려불고 그리 제방을 쌓아불고 하니까 방죽이 생겼던 자리가 그래도 남아있제.
그 전에는 거기서 생수도 나고 그랬는데 댐을 막아 분 뒤로는 겨울에 농업용수 딱 가로막아 보타부러 물이 얼마 없어. 진두섬은 쪼그마하제. 방죽있고.
지금도 조금씩은 생수가 나. 겨울에도 아조 보투지는 안해요. 지금은 농사 질 대는 많이 사용하고…
근께 옛날에 물줄기가 용면서 담양호 막기 그 전에 옛날에는 물이 거기를 쳤다니까. 하천이 거기를 쳐서 거가 방죽이 생기는 거여. 말하자믄. 사람들이 바르게 사니까 질서가 잽히니까, 하천정리를 하고, 물줄기 제대로 잡고, 제방을 쌓고 해서 이 물이 안 달라 드니까 엣날부터 진도섬이라고 생긴 자리가 지금은 방죽같이 그렇게 남아있제 말하자믄.


금성면 평신기 마을 유래
▲제보자= 조현종(남, 1946년생)
▲줄거리= 평신기 마을은 370년 전 분산등에 여양진씨와 옥천조씨들이 자리를 잡았다가 괴질로 못살게 되자 부곡으로 옮겼다가 다시 편평한 땅인 평신기에 자리를 잡았다.
▲이야기= 평신기 마을이 형성되기 전에는 약 370년 전, 1650년경에 원래 이 마을 있었던 것이 아니고 저쪽에 분산들이라고, 분산등에 가서 마을이 여양진씨 허고, 옥천조가들이 터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괴질들이 발생해 가꼬, 사람들이 많이 고생하고 다치고 뭣 허고 헌 게, 도저히 그랴꼬 못살레 생겨서, 요쪽에 가마실이라고 부곡, 뒷산 너머로 이주를 전부 했죠. 이주를 하고 살다가 땅이 여그 마을이 편편하고 옥토가 그런디, 우리가 왜 산속에서 이렇게 살아야 되겄냐 해가지고, 이리 와가지고 터를 잡고 살아 가지고 여가 평할 평(平)자 또 뭐냐 새신(新)자 터기(基)자 평신기라고 지어 가지고 지금까지 불러 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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