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담양설화 및 전통 이야기(2022년 3월30일자)
천년 담양설화 및 전통 이야기(2022년 3월30일자)
  • 담양군민신문
  • 승인 2022.03.2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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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면 산이천 마을 전경

 

금성면 산이천 마을유래

제보자= 김정묵(, 1940년생)

줄거리= 진주하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마을인데 지금은 여러 성씨들이 살고 있단다. 마을은 작지만 공무원도 나오고 내실있는 마을이다. 예전에는 동네 앞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숲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많은 분들이 화전놀이도 하고 학생들은 소풍을 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지금 노인 양반들 다 돌아가셔불고 지금 남자로서는 여그 한 분 살아 계신디 84세 잡순 양반인디 그 양반도 아퍼 계시고 그리고는 인자 내가 옛날 웃대에서 할아버지들한테서 들은 말로는 우리 동네 마을이 산이천이란 마을은 원래 하씨터여. 하씨 집성촌 말허자면 전체를 이루고 살았는디 모냐 먼저 뭔 하씬지는 모르제. 그런디 이 세월이 가면서 변천사가 되가지고 이렇게 인제 현재는 전부 여러 성바지가 살고

조선 초기부터 지금까지 산이천 마을로 불리워졌으며 19143월 행정구역 개편 후 대곡 2구에서 대곡 3구로 분구되었습니다.

동네 앞으로 쭉 허니 이런 아름드리 소나무 그 다음에 참나무 버드나무 해가지고 꽉 차가지고 말하자면 이렇게 유원지가 되았어요. 근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잘못되어 가지고 특조법으로 그냥 개인이 누가 한 사람이 거시기 해가지고는 그걸 개인한테 팔아 부리니까

다 그 많은 이런 소나무들 지금 그 그런 옛날 나무가 그대로 있고 그런다면 전라남도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유원지가 돼야 있을 것이.

그런데 밑에는 큰 잔디가 까라져 같고 있어. 동네에서 관리를 했지. 옛날부터 옆에가 큰 냇물이 있었어요. 긍께 비만 오면 냇물이 이렇게 오니까. 거를 방지허기 위해서 거기다 말하자면 치산치수를 헌 거제. , 웃 숲, 아랫 숲, 요렇게

거그는 더 넓브게 항시 넓었소 그리가꼬는 이런 둘이 이렇게(손을 벌려서)해도 안달 나무들이 전부 꽉 차갔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인자 옛날에 대대로 선조들이(선조들이)심었제. 그 냇물을 방지를 이 동네에 들어온 물을 방지허기 위해서 심은 거제.

그래갔고 그때 한 육십 이삼년 도에 옛날에야 개인이 특별 조치법으로 해가지고 뭐 동네사람 십 원 짜리 하나도 거시기도 못 허고 다 넘어가 부렀어.

그렇게 많이 나무가 있었어요. 읍내에서도 중학교서도 다 소풍오고 그랬어. 읍내에서도. 광주에서 다 왔어. 광주에서. 여그 소풍을 다 왔어. 산이천 동네 일년에 한번씩 동네서 큰물 지면 유실을 방지허기 위해서 일 년에 한번씩 출력을 전 동네가 나서가지고 출력을 해가지고 거그 나무를 쌓고 못 떠날라가게 방지허고 막 그랬제. 근디 그 좋은 숲을 개인이 갔다가 그냥

(조사자 : 글면 이 마을에서 거그 가서 화전놀이도 하고 그르셨어요?)

암 관광지당게. 읍에서도 다 왔어. 그때 나 시집온 게 장구치고 아주 면소재지에서도 와서도 여그와서 얼매나 많이 놀고 그랬는디 관광지라. 여그 저그서 와서 장구치고 장구 친 양반이 시방도 살아 계신디.

냇물이 얼매나 좋은 게(그전에 댐이 생기기 전이라) 고기가 눈앞에 보이고 고기도 다니고 거 뭐 맑으니 모래고 물이 얼매나 좋은 디 그랬었어요. 근데 이렇게 돼야 불고 지금은 인자 영원히 그런 거시기는 찾아보기 힘들 거요.

금서면 고지산 기우제

제보자= 최성춘(, 1943년생)

줄거리= 비가 안 오면 기우제를 지내러 담양읍내에 명산인 남산과 동부 쪽으로는 고지산에 와서 줄을 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호미를 들고 와 남의 묘를 파다가 묘 주인과 실강이를 벌리기도 했다. 통돼지를 잡아 바위에 피를 묻혀서 비를 오게 빌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제가 기우제 대해서는 저는 어렸을 때 초등학교 1,2학견 무렵에, 그 때에 기우제를 지냈다고 그 기우제 지낸다고 해서, 주체는 어디가 돼 있는지 모른디, 담양에서는 남산이 명산이라고 해서 그쪽으로 비가 안 오면 그쪽으로 가고, 동부 쪽으로는 석현리 소재지 이상으로 일로 또 기우제를 지내러 온 것 같아요.

이리가 저 어디냐며는 고지산으로 지금 우리 동네 허고 우리는 저 무제라고도 허고 그랬죠. 비가 안온다고 해서 그렇게 했는디, 이거 우리는 그 때 사람들이 많이 오고 그러니까, 우리들 호기심에서 우리도 따라서 올라가 보기도 하고 그래야 된디. 거기 가서 호미로 가지고 가서, 사람들이 이렇게 파고 나오며는 그래도, 어딘가 미신인가 모르지마는, 비가 한 방울씩이라도 이렇게 온다고. 오고 그런 것도 저희도 경험도 해 보고 그려. 하도 비가 안 오면 그렇게라도 해서 비를 좀 바래는 마음으로 아마도 그렇겠죠.

그래 가지고 그런게 기우제 지내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보며는 그 때는 담양댐도 없어올 때고. 그래서 여그 보면 여그는 나락을 벼들을 심어 가꼬 벼가 파란디 석현이랑 저쪽의 대성리 쪽으로 댐도 없고 그러니까 막 여그와서 보며는 아 당신네들은 참 밥 먹고 살겠다그러고 시기하고 막 그런 사람들도 있었어요. 여기는 모를 심어가꼬 모가 시푸러가꼬 된 디, 다른 사람은 모도 못 심고 있으니까 인자 그랬죠.

근디 산에 묘가 넘의 묘를 불법으로 파내니까, 산주들은 못 파게 난리고. 막 법으로 허네 어찌네 헌 디 그래도 여러 사람이 그렇게 허니까 결국엔 가서 보면 그 묘를 파내불고, 그런 걸 저희 봤어요. 지금 가 보며는 거기가 이러고 패여 가꼬만 있제. 묘도 없고 그런 걸 봤어요.

그때 우리 어렸을 때는 우리 적으니까는 가보지는 못했지마는 돼지머리 같은 것도 갖다 놓고. 파기 전에는 아마도 그런 거시기가 있다고 그러게 들었죠. 우리는 어려서 가도 못 허고, “ 어린애들이 뭐 허로 오냐허고. 그래서 가다 가분 뒤에 좀 커 가지고, 가 보며는 묘를 파러 간다 허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했죠.

피도 돼지 같은 걸 해가꼬, 잡아 가꼬 피도 거기다 파내고 묻힌다 그런 말도 나오고

(청중 : 거그가 바우가 있어.)

대나무 말석 만든 이야기

제보자= 남난례(, 1959년생)

줄거리= 비내동에서는 대나무로 석작도 하고 밥바구니, 끈다리 비구니도하기는 다 했는데 이바지에 많이 쓰는 말석을 주로 만들었으며, 온 가족이 일을 분담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말석은 우리도 대는 없었어. 아버지가 인자 사다가 대 다 뜨고 날대 사다가 날대로 다 뜨고 그러므는 엄마가 바닥을 짜. 아버지는 대 뜨고. 아버지는 대 떠놓고 만들어 엄마는 바닥 짜 갖고 해주므는 굽도리 해주며는 우리는 대사리로 올려. 올려갖고 요만치 올라가게 만들어.

50센치. 3~40센치 올라가제. 그래갖고 그 놈을 다 해노믄 고것을 세발을 해야돼. 세발 해 갖고 다 해노믄 고것을 엮어야해. 세발한 놈을. 그래야 나중에 갱기로 감아. 이 만치 해 놓고. 딱 해 노믄 우게가 남은 것이 있어. 요정도 남은 것이, 그 놈을 째갖고 세발을 해야 돼. 날대 옆에 있는 놈을 저 양쪽으로 해 갖고 가운데 거 띠어내고 고 놈을 가눈데 띠어 논 놈을 짤라 내고 그 놈을 다 엮어. 엮어갖고 놔뒀다가 또 갱기대 아버지가 만들어주고 키대도 만들어야 해. 거기다 대갖고 담을라믄.

(조사자 : 감는 거를 갱기라 해요?)

. 키는 또 둘러지는 키대가 있어. 그래갖고 고 놈도 못 빠져 나가게 고정을 시켜야 돼. 나무로 만든 집게가 있어. 못 빠져 나가게 고정을 딱 시켜갖고, 그래갖고 갱기로 감아. 뚜껑도 그렇게 해 갖고, 담아 갖고 놔두면 뚜껑도 다 맞춰. 그래갖고 복판을 덮어 노며는 거기다가 고삐대라고 양쪽에 네 군데를 찔러 두 개씩, 한군데다 두 개씩, 내 군데다 요쪽 하나, 요쪽 하나, 이렇게 해 갖고 딱 네 군데다 찔러.

(조사자 : 왜 말석이라고 해요?)

네모니까 말석이라고 해. 석작은 길어. 석작도 하고 밥바구니도 하고 하기는 다 했어. 말석을 제일 많이 했제. 석작은 길고, 밥바구니는 동그랗고 밥바구니에다 끈도 달라믄 달고, 크게 한놈은 그냥 밥바구니로만 해 놓고 끈다리라고 끈을 달어. 작으마케 해 갖고 여름에 밥도 너넣고 시원하라고, 그늘에다 놔뒀다가,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었잖아. 그래갖고 거기다가 너 놨다가 밥을 먹고 그랬제. 말석은 이바지 같은 더 보낼 때 많이 써 묵고, 집에서 시앙 모시고 그럴 때 담아갖고 가고, 음식 같은거. 석작도 고런 식으로 쓰기는 썼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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