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66. 천년 담양, 설화 및 전통 이야기
  • 담양군민신문
  • 승인 2022.09.0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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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면 두장리 두지동 수막이 숲

 

용면 두장마을 유래와 입향조 이야기
▲제보자= 허두영(남, 1940년생)
▲줄거리= 두장리는 처음에 동녘골(복내골)에서 함양최씨들이 자리를 잡고 살다 두 번째 옮겨 최씨, 심씨, 허씨들 여러 성바지가 살고 있다. 뒷동산이 두지 아침 쥐가 노적을 보는 조서 아래쪽에 세 번째로 터를 잡아 사는데, 쌍태리 추성리 등 추월산 아래쪽 물들이 내려와 마을이 피해를 입자, 하천가에 쉬나무를 심고 마을을 방어했다.
▲이야기= 복내골이라고 있어요. 복내골이라고. 복내골에서 그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씨, 심씨, 안씨, 기타 성받이들이 살았드마. 여기서 도둑이 많으니까, 우리 마을이 두 번 한번 일차 옮기고, 여그가 두 번째
첫 번째는 복내골이라고 있어요. 지금에 와서는 동녘골이라 근디 복내골이라고 있었어.거기서 함양 최씨들이 죄우지하고 살고, 그 다음에 심씨들이 그렇게 살았어요. 그렇게 살았는데…그 뒤에 인자 거기서 도둑이 많으니가 물도 없고, 1차 우리여그 당산, 당산 뒤에로, 한옥을 지어 가꼬 이사를 했다가 거기서도 물이 일부 없어서 당산 이쪽으로 나왔다 그런 얘기라고…
여기서부터 두지동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어찌 두지동이냐 뒷동산이 두지라 말을 하고 산 우게 가면 산이 이렇게 뽀족한 거 있어요. 이게 조서라 어른들 말 들으면 조서란 얘기는 아침에 쥐가 노적을 보고 무는 형태다.
그래서 여그가 그런 형태가 다 남아 있어요. 그래서 세 번째 여그가 정착이 됐는데 그때는 여그가 임야였대요. 임야였고. 제일 먼저 진(지은)집들이 지금 우리 요그여. 당산이(있는 쪽으로) 지금 현재 그 밑으로 집이 제일 먼저 형성 됐어요.
그러고 우리 동네 가운데가 하천이 있거든요. 근데 여기까지 물로 하천으로 되어 있어요.
둑 막기 전에는 어르신들이 이 신 밑에로, 이사를 해서 와서 보니까, 이쪽에서 물이 막 달라 들거든.
(조사자 : 어느 쪽이요. 마을에서 봤을 때)
아까 오신데. 쌍태리 쪽에서 나와 여그 천이 두장리 하천, 그러는데 쌍태리 쪽에서 흘러 가꼬 이쪽에다 막 때리니까, 옛날 어르신들이 이 나무를 부락을 방어하기 위해서 심었다 그런 이야기고…
그래서 아까 되돌아가서 동녘골이라는데 가가꼬, 최씨들하고 심씨들 양씨들 기타 성받이 살았는데 저는 양천허씨 거든요. 긍게 담양 1대 할아버지로부터 18대손이거든.
우리할아버지 되신 분이 삼형제분이 담양으로 와 가꼬, 다 갈리고 큰할아버지만 오셨거든요. 그 양반으로부터 우리가 18대 때 그 할아버지가 몇 살 자셔서 동녘골에 왔는가 몰라도, 거기에서 지식은 있고, 처음으로 혼자 여기 정착을 허고 보니까, 갈 때 올 때 생활하기 곤란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최씨 집안에 가서 최씨 집안이 들어가서 옛날에는 한옥으로 막 양반집에 좋게 짓고 잘 살아. 공부를 가르치고 그 뭐라 그래요.
(조사자 : 서당에서 공부하는 것 처럼요?)
예, 그런 것을 했다 그래요. 근디 우리 집안 어르신들은 챙피하다고 이야기를 안 해요. 그렇다라고만 얘기를 해줬지. 우리가 최씨 집안에서 최씨 집안 손들을 가르치고 해서 거기서부터 성장을 했어. 우리 지금 양천 허씨가 32대까지 나왔어. 32대까지
우리가 어디에서 보면 우리 집안사람들이 좌우지하고 살았어요. 담양이고 용면이고…담양군청 내에 허씨라면 아주 허청이라 말까지도 했데요.
그때 당시 옛날에는 동녘골이라는 앞에 가서 아주 그 옛날에는 쟁기로갈고, 사람이 손으로 심었을 때 제일 우수한 농토라 그랬어. 쌀이 질이 좋았어. 그런 것을 보며는 그래서 부자가 옛날에 논을 만들 때, 평야지역 넓은 땅을 만들었을 거 아닙니까. 그러고 가난한 사람은 산골짝 덤터리 이렇게 만들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 형태이고…
그 뒤로 어르신들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냐면 여그 뒷동산에 보면 우리 웃대 할아버지 한분 묘가 써져 있어요. 그 밑에 가서 평지가 좀 있거든요.
거가 모정이 있었어요. 그래 가지고 거기 가서, 당산나무가 있어서 당산제도 지냈다, 그렇게 얘기하고…
쉬나무라고 해가꼬 아름드리 나무가 하천가에 심어졌었어요. 동네를 방지하기 위해서 물이 막 때리니까. 집터를 허물어…쉬나무라는 것이 이런 것이 하천가에 쭉 심어져 가꼬 저쪽 사람이 이쪽으로 오는데 비만 오면 못 다녔어요. 돌다리를 놓고(건너다녔어요.)

용면 두장리 수구막이 숲
▲제보자= 허두영(남, 1940년생)
▲줄거리= 두장마을 마을회관쪽을 뒷네, 안쪽 하천가 건너편을 안네라고 불렀으며, 뒷네 하천가에 물이 침범해 오니까 나무를 심어 방어를 했다. 원래는 하나의 정자였다가, 인구수가 많아져 쉼터 정자들로 불려지며 세 개가 되었다. 자갈이 많아서 갱번이라 했다.
▲이야기= 갱번이라고 불렀어요. 거기는 뒷네, 마을 앞에, 여가 뒷네입니다. 동네로 말해서 뒷네라고 그래요.
저기는 앞네, 여기는 뒷네고. 그렇게 얘기해 왔어요. 근데 자갈밭들이 하천이 돌도 많고, 풀도 많았어요. 옛날에 비만 오면 다리도 못 건너다니고 그랬는데, 그전에 우리가 알기 전에 여그 동네를 방어하기 위해서 귀목나무하고, 팽나무가 있습니다.
팽나무가 있고. 참나무가 있고, 참나무는 한그루고, 팽나무는 다섯 그룬가 되고, 그다음에 전체 귀목나무에요. 귀목인데 언제 심었는지 조차도 모릅니다. 부락(마을)을 방어하기 위해서 심었던 것입니다. 그랴꼬 그 뒤에 나무를 심어 놔도 요리 물이 계속 달라 들어싸지 않습니까. 그랴꼬 큰 아름드리나무가 가양에 있는 것은 물에 의해서 넘어져가꼬 뽑아낸 그런 경우도 있었고. 그 뒤에 인자 정부에서 이렇게 뚝을 막아 부니까 안전하게 안 되었습니까. 그래서 그 나무가 지금까지 그렇게 지속 되어 나오고, 이 뚝은 지금 나무 있는 것은 몇 년 안됐어요. 내가 동네일을 볼 때 군에다가 치수과에다 이야기를 해서 이 나무를 심었어요. 이 벚꽃나무를 심었어요.
쌍태리라고, 그 추월산 이쪽 용면 물이 전부 비만 오면 그 물이 전부 두장리 앞으로 지나가요. 그 물이 딴 데 간 데 없이 추월산 밑에 쏟아진 물은 추성리, 쌍태리, 박곡 전부해서 이물로 다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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