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의 피맺힌 5월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시인 김준태 선생께서, 봄빛이 깊어가는 어느 날 담양 금성리를 찾으셨다.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호남정맥이 굽이치며 금성산성과 금성산, 광덕산을 지나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이 산줄기 아래, 시인은 마치 오래된 침묵을 꺼내듯 천천히 마을을 걸으셨다.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초록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선 시인의 발걸음은 고요했고, 그 풍경은 어딘가 숭고했다. 대숲과 죽로차 밭, 그리고 작은 샘의 속삭임을 말없이 바라보던 시인의 모습 앞에서, 나는 어느덧 마음 깊은 곳에서 한 편의 시를 꺼내 들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그 순간 나는 마치 모노드라마의 배우처럼 시를 읊조렸다.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심장은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한 편의 낭송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역사와 시대를 소환하는 의식이었고, 광주의 5월을 가슴에 품은 민중의 상처에 바치는 조용한 제의였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 김준태 ―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중략-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을 죽고도 몇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 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그날 나는, 1980년대 말 ‘광주문화운동협의회’와 ‘민족작가협의회’에서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당시 종합연희패 ‘밥그덩’의 대표이자 연출로서, 임동확 작 「내릴 수 없는 깃발」, 황지우 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등을 무대에 올리며 시대를 증언했다. 예술은 곧 삶이었고, 삶은 곧 저항이었다. 그 치열했던 시간과 공간을 시인과 함께 조용히 되짚었다. 시인은 아무 말 없이도 많은 것을 함께 느끼고 계신 듯했다.
이날 시인께서 전해주신 『푸른사상』 제50호에는 「스페인 시에 민요정신을 심어준 국민시인 크로카」라는 시평이 실려 있었다. 시와 삶을 한 몸으로 살아온 한 거인의 문학 여정은 후대 시인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격려이자 울림이었다.
금성산의 산빛과 덕산원의 샘물, 바람과 햇살은 시인의 발걸음을 품듯이 감싸 주었다. 시인은 말보다는 시선으로, 침묵 속에서 깊은 교감을 나누어 주셨고, 나는 다시금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뜨겁고 조심스럽게 내 안의 광주를 꺼내놓았다.
5월이 되면 더욱 그리워지는 이름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다시 묻는다.
“정말 우리는 아주 죽어 버렸는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고, 다시 살아나고 있다. 시는 지금도 이 마을에서 숨 쉬고 있고, 기억은 깃발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그날의 만남은 시인과 함께한 하루를 넘어, 역사의 언저리에서 다시 깨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시인의 고요한 방문과 깊은 동행에 감사드립니다. 직별인사처럼 조용히 건네주신 박하사탕 몇 알, 그 향기가 마음 가득 퍼져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선생님의 건강과 평안을 마음 깊이 기원드립니다.